부여, 추억여행을 다녀오다

By | 2017-03-11

장미빌라

1992년 봄, 공중보건의로 발령을 받아 부여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발령지였던 부여는 내게는 그저 낮선 곳이었다. 첫 아들은 아직 돌이 되지 않았고, 아내의 뱃속에 둘째 아들이 있던 시절, 우리 가족은 그렇게 부여 읍내로 이사를 했다. 병원에서 제공해 준 사택은 조그마한 빌라였다. 1층이었지만 베란다 쪽에 방범창도 없고, 거실 바닥에는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 곳이 장미빌라였다. 두 동으로 되어 있는 장미빌라는 3층짜리 건물이다. 오늘 가봤는데, 방범창이 생긴 것 말고는 25년 전 그대로 이다. 주변에 건물들이 들어서서 큰 길에서 잘 안보이게 되었다.

부여중앙성결교회

1년 조금 넘게 부여중앙성결교회를 다녔다. 그곳에 나는 찬양팀에 있었다. 당시 담임목사이셨던 최대원목사님은 2011년 1월에 우리 교회에 오셨을 때 뵌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은퇴를 하신 후 이었고, 그 때 최목사님께서 “이제 장로도 되는데 긴 머리를 자르지, 그래?”라고 말씀하신 이유로 긴 머리를 자르게 되었다. 부여중앙성결교회는 2011년 새로운 예배당을 그 자리에 지었다. 읍내에 있는 교회로선 규모가 있는 예쁜 예배당이었다. 아직도 부여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성요셉병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나의 근무지였던 성요셉병원도 들어가 보았다. 당시와는 건물 내부가 바뀌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생소했다. 잠시 둘러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내가 2층 분만실에서 둘째를 분만할 때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 갔다가, 분만 후에 계단을 걸어서 내려와 퇴원을 했던 그 때가 떠올랐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병원환경, 거기에 응급실장으로 근무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중앙시장

점심 때인지라 중앙시장에 들어가 보았다. 성요셉병원 뒷편 동쪽에 위치한 중앙시장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나 아내는 중앙시장에 대한 이런 저런 기억들을 떠올린다. 시장 안에 있는 신포우리만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버스터미널 앞쪽 길을 걸어 다시 부여중앙성결교회 쪽으로 갔다. 그 뒷쪽에 주차를 해 두었기 때문이다. 가던 중 눈에 띄는 미용실에 들렀다. 그 원장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벌써 25년의 세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궁남지와 정림사지

차를 몰고 남쪽으로 쭉 가면 궁남지가 나온다. 연꽃 연못이 예전보다 더 커진 듯 하다. 주차장도 생겼다. 재미있는 것은 그 곳에 작은 상점이 하나 있었는데, 아직도 그곳에 그 상점이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다. 그 상점 이외에는 다른 건물은 없다. 연꽃이 피는 계절에 궁남지는 매우 아름다울 듯 하다.

궁남지에서 읍내 중심쪽으로 가면 정림사지가 나온다. 새로 주차장을 만들었는데 부여박물관쪽으로 가서 주차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당시에 와본 기억이 거의 없지만, 오층석탑만 달랑 서 있던 기억만 있다. 지금은 약간의 복원을 해 놓은 듯 하다. 넓은 정림사지를 둘러 보는데, 봄 볕이 너무 뜨겁다. 봄 볕에 얼굴이 많이 탈 듯 하다.

부소산성과 구드래공원

정림사지에서 차를 몰고 다시 장미빌라쪽으로 갔다. 장미빌라에서 걸어서 구드래공원까지 가는 뒷 길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길은 좁고,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불편했지만, 옛 추억을 되살리고자 그렇게 구드래공원까지 갔다. 구드래 공원에서 북쪽으로 유명한 고란사와 부소상성 낙화암이 있지만, 그냥 구드래공원에 차를 세우고, 백마강 둑에 올라서 백마강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구드래 공원은 좀 더 정리가 된 하고, 나무들이 더 자란 듯 하다. 백마강둑 아래의 잔디밭에서 모형비행기를 날리던 모습이 기억에 떠올랐는데, 마침 소형 자동차를 원격으로 운전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강건너편, 산 아래 있던 집들은 그대로 변화가 없어 보였다.

다시 부여를 떠나 전주를 향했다. 차에 찍히는 온도가 18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봄 날에 25년 전에 1년 반 정도 살았던 부여를 여행했다. 감사한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