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眞情性)

By | 2017년 6월 7일

진정(眞情)이란,

  •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
  • 참된 사정.

을 뜻하는 단어이다. 진정성이란 “그 마음이 참되냐? 애틋한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할 때, 진정성이 있으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바로 “참된 마음”이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진짜로 참된 것인지, 꾸며낸 그럴싸한 모습인지 우리는 제대로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하는데 그 말에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성을 나중에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바로 “행동”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어제 서울에서 KTX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에 도착 후,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마침 윗집 아주머니가 먼저 타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엘리베이터를 잘 타지 않는다. 그런데 가방이 너무 무거운 탓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어제 많이 시끄러우셨죠. 아이들이 와서요. 죄송해요.”라고 말한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이 아주머니 입에서 “죄송하다”라는 말이 나온 것은 2년 넘는 층간소음 문제에서 처음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다. 피곤해서 내가 말할 기운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나는 그 아주머니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과를 하기 위해서 나를 일부러 만난 것이 아니고,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같이 이용하는 도중에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우기 지금까지의 아주머니의 태도로 봐서는 그 말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 동안의 행동으로 봐서는. 물론, 그 아주머니가 진심으로 그렇게 사과를 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에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백번의 말보다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그 아주머니의 말에 진정성이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과연 층간소음이 없어졌을까? 아직까지는 아니다. 똑같다. 따라서 그 말에 진정성이 없다고 현재까지는 판단할 수 있다.

뭐가 그리 까다롭냐?라고 반문을 할 수 있다.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과의 말이 아니다. 조금만 조심하며 살면 된다. 그것이 전부이다. 자정이 넘어서 뛰어다니는 손주를 조금 일찍 재우면 되는 것이고, 새벽시간에 절구질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인 것이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층간소음은 공동주택에서 사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서로 조심하자는 것이다.

앞으로의 행동을 보면, 그 말에 진정성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될 듯 하다.

종교적 회심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나님 앞에 회개를 했다면, 앞으로 같은 죄를 범해서는 안된다. 회심이란 그저 후회나 반성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바울이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다. 베드로도 그랬다.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말은 진정한 회심이 아니다.

3 thoughts on “진정성(眞情性)

  1. 김은영

    ‘진정한 것’은 시간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 금방 생기는 것은 더욱 아니구요.
    이층 분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어떠셨을지, 상상 됩니다.

    Reply
    1. 김형태 Post author

      조금은 더 지켜 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이웃인데요.
      저도 아래층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지 궁금해집니다.
      저나 집사람은 매우 조심합니다만…
      그래도 혹시…모르는 일이지요.

      Reply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