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성도의 죽음

By | 2018-06-23

얼마 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OOO 성도가 위독하다는 전화였다. 그리고 며칠 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약 한달 전이었다. 교회에 새롭게 등록을 하고나서 첫 주 교육시간에 그를 만났다.

나는 보통 등록 후 5주부터 8주에 이르는 4주 코스의 “확신반”에서 교육을 맡고 있다.  그런데 그 날은 첫 주를 맡아야 할 분이 다른 일이 있어서 그 성도를 맞이하게 되었다. 첫 주는 “4영리”라는 대학생선교회(CCC)에서 만든 작은 책자를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과정이다.

그는 오래 전에 뇌출혈로 쓰러진 탓에 몸의 한 쪽에 마비가 있고, 말이 어둔한 상태였지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을 하였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삶을 살기로 작정을 하였다. 물론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해서 곧바로 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화의 과정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죄인인 우리는 말씀에 의지하여 죄인된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장 20절)” 이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달만에 그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야기를 전해 듣기로는 그가 생전에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건강한 삶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천국에 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교회에 다니든지, 그렇지 않는지 간에 누구나 아는 성경말씀, 사도행전 16장 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내 자신이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나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누군가 보다 조금 낫다고 생각해도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우리의 인생을 한번 돌이켜 보라.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죄인의 삶이었던가 말이다. 자기와 자신의 가족에게는 늘 넉넉함과 풍성함을 누렸지만, 남에게는 얼마나 인색했던가 말이다. 우리가 가진 사람이 그 얼마나 이기적인 사랑이었던가? 우리의 죄가 그것 뿐이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스스로 내 삶을 돌아다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인가를 점검해 보는 것이다. 부끄러운 내 자화상을 보는 것이다. 야고보서 2장 14~17절의 말씀이 내 마음을 내려친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데, 과연 나는 “나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냐?”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 믿음이 온전하여야 내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천국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