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영향력이다

By | 2020년 2월 12일

Leadership is influence.

내가 읽어본 책에선 이 말을 John Oswald Sanders가 했다고 나와 있는데, 검색을 해보니 John C. Maxwell (American author, speaker, & pastor)이 한 듯하다. 이런 제목의 글을 쓰려고 하는 것에는 누가 이 말을 했는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2019년에 쓴 블로그의 글들을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언급된 글(2019년 3월 24일, 글제목 : “OO교회의 안타까운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일부만 인용한다.

[전략] 추가합니다. 이 글을 쓴 주일, 밤예배에서 담임목사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를 거론하며 “원로목사에겐 존경을, 담임목사에겐 리더십을 인정해 달라”는 취지의 설교를 했다. 대놓고 엘리사를 놀린 소년들을 암곰 두마리가 나와 공격하여 42명이 죽었다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가관이다. 현재의 상황을 토대로 본다면, OOO 목사는 “사이비 + 사기꾼”이다. 이것이 사기가 아니고, 사이비가 아니라면, 이 세상은 더 세상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이 글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내 머릿속에서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 ‘리더십에 대하여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길래 저러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고 있었는데, 마치 어젯밤에 읽은 책에서 리더십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는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리더십 (leadership)의 사전적 의미는 “무리를 다스리거나 이끌어 가는 지도자로서의 능력.”이다.

Braden Becker은 리더십을 이렇게 분류했다.

  1. Democratic Leadership (민주적 리더십)
  2. Autocratic Leadership (독재적 리더십)
  3. Laissez-Faire Leadership (자유방임의적 리더십)
  4. Strategic Leadership (전략적 리더십)
  5. Transformational Leadership (변혁적 리더십)
  6. Transactional Leadership (업무적 리더십)
  7. Coach-Style Leadership (코치 스타일 리더십)
  8. Bureaucratic Leadership (관료적 리더십)

어떤 형태의 리더십이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무리를 다스리고 이끌어가는 능력이고, 그 능력은 곧 “영향력”을 말한다. 교회 안에서의 리더십은 바로 “교회 공동체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다. 그저 성도들에게 “리더십을 인정해 달라”는 식의 구걸은 천박함만 보여줄 뿐이다. 원글에서도 “천박”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리더가 제대로 리더십을 갖지 못할 때 보여지는 모습이 바로 “천박함”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책에서 리더십을 정의하는 대목 뒤에 이렇게 표현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날 상황은 매우 역설적이다. 자신을 지도자로서 자처하는 이들은 많지만, 존재로서 영향력을 미치며 그룹을 이끌어 가는 참된 리더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처치 시프트, 이상훈 저)

리더십, 특히 교회 내에서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교회공동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성경적 리더십을 갖지 못하고, 세속적인 리더십만을 꿈꾸고 있다. 따라서 그런 리더들을 교회에 리더십을 구걸하는 천박함을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이런 문제는 비단 목회자의 잘못 만은 아니다. 일반 성도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교회관”이나 “왜곡된 목회자관”이 작금의 한국교회와 목사들을 괴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것도 긴 시간동안 성도들을 우매화해온 목회자들의 잘못에서 비롯한다. 즉, 그동안 잘모 학습된 교회관과 목회관으로 리더에 대한 잘못된 태도와 모습을 보여왔고, 결국 왜곡된 리더자를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죄성을 가진 인간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모든 것을 꼼꼼하게 살피고 겸손하고 겸허만 마음으로 교회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도 수많은 교회들이 이런 시행착오를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안타까운 모습들이 한국교회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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