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 한분이 쓴 단톡방 글 하나,

By | 2020년 2월 16일

계속해서 글이 올라오는 단톡방이 있다. 이름하여 “바울교회 바로세우기 위해 모인 거룩한 성도들의 방“이다. 줄여서 “바바세”라고 한다. 바울교회 사태를 걱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성도들의 단톡방이다. 많은 성도들이 참여하다가 반대쪽 사람들의 단톡방과 함께 없애자고 합의함에 따라 많은 분들이 나갔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다시 300명이 넘는 분들이 의견을 나누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 오늘 어느 안수집사 한분이 글을 올렸다.

“기도하시오”라고 말하는 종교인은 많다. “현실과 역사를 올바로 보세요”라고 말하는 종교인은 보기 어렵다. “잘못된 현실을 정확히 보세요. 불의한 세력에 저항하세요. 그리고 기도를 잊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기도는 현실을 외면하는 아편도 아니고, 행동하지 않기 위한 알리바이도 아니다. 기도는 현실을 한방에 고치는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생각을 방해하고, 침묵을 권하고, 저항을 가로막는 기도는 가짜 기도다.

기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올바른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기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올바른 기도, 의로운 기도를 해야 하겠다.

출처 : 바울교회 바로세우기 위해 모인 거룩한 성도들의 방

오랜만에 공감이 가는 글이다. 교회 안에 성도들 중에서는 교회내 불의한 문제에 대하여서도 이상한 논리로 그것을 외면하거나 침묵한다. 그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라는 논리이다. 우주의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인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버리는 무지함에서 비롯한 행동일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 자유의지이다. 우리는 그런 속성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판단기준과 행동방식을 정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침묵한다.

교회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장로들 중에서도 “우리는 기도만 하면 된다.”라는 기도만능주의적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위에 안수집사 한분이 적어둔 글에 여기에 대하여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기도는 현실을 외면하는 아편도 아니고, 행동하지 않기 위한 알리바이도 아니다. 기도는 현실을 한방에 고치는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생각을 방해하고, 침묵을 권하고, 저항을 가로막는 기도는 가짜 기도다.”

절못된 헌금사용에 대하여 지적하면, 어떤 성도들은 “일단 하나님께 드린 헌금은 어떻게 쓰이든지 상관하면 안된다.”라는 발언도 한다. 비성경적 설교를 하는 부분에 대하여 지적하면, “하나님이 세운 종(목사)이 거짓말을 하든지, 협박을 하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순종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교인도 있다(이 부분은 이미 다른 글에서 써놓은 바 있다.). 주일 오후에 컴 앞에 앉아 있는데 단톡방에 좋은 글이 올라와 이렇게 내 블로그에 옮겨 놓는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면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에 있는 내용 한군데를 옮겨본다.

불의를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의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은 무신적인 세상 논리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라 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꽃자리 출판),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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