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의 ‘선한 영향력?’

By | 2021년 10월 15일

일반적으로 주일예배 후에 늘상 이런 표어가 성도들에게 주어진다.

“세상에서 나가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삽시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산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삶의 ‘소망’이자, ‘지표’이자, ‘목표’이자, ‘사명’이기도 하다. 불현듯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 그렇지 못하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선한 영향력과는 거리가 만 기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관점은 조금 다르다.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살고 싶다는 말 속에는 “자신이 선하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고,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어떤 우월감을 갖고 있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즉, 교회 밖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 안에 숨겨져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처럼 스스로 “선민의식”을 갖고 있다.

과연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선민’일까?

이런 질문을 기독교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 선민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왈가불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선민의식을 가졌다면 선민처럼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독교인들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선하게 사십시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 것도 없이, 그냥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처럼 그냥 선하게 사시길 권해드립니다. 신앙과 삶이 별개인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인간본성에 남아 있는 “선함”을 추구하며 그냥 선하게 사시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하게 살게 되면 굳이 자신이 입이나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는 ‘선한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모습 속에서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선민”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선민이고, 그것이 구원의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냥 선하게만 사십시요!”

# 이 글은 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럴싸한 단어들로 성도들을 현혹해서, 교회 밖에서 신앙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일부 목회자들을 향한 글입니다. 아직도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생활이 성도의 임무의 대부분인양, 성도들을 속이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아서 써놓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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