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국가가 되어가는 사회

By | 2023년 2월 15일

위키페디아의 정의를 보자.

사회주의(독일어: Sozialismus, 러시아어: Социализм, 프랑스어: Socialisme, 중국어: 社会主义, 영어: Socialism)는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 경제와 모든 사람이 노동의 대가로 평등하게 분배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다양한 사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며, 또는 그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글위키페디아

진보를 자처하는(결코 진보적 성향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민주당에서 내놓은 정책은 전체적으로 사회주의국가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기본소득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몇년동안 길거리 프랑카드에서 보이는 것 중 하나가 “청년취업”이나 “청년실업”과 관련된 지원금에 대한 것들이다. 이것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

일자리가 없다?

이 질문에 답변을 할 사람이 있다면 해보길 바란다. 일자기는 널려 있다. 편하게 일하면서 봉급 빵빵하게 받는 일자리가 없다는 생각은 안해봤는가 말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무슨 자본주의의 경쟁이 무조건 좋다라는 뜻은 아니다.

최소한 젊다라고 한다면, 스스로 땀을 흘려서 일한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으라는 뜻이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사회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어제 운전을 하다가 본 프랑카드는 “청년창업”에 관한 것이었다. 그 내용을 모두 알 수 없지만, 프랑카드에 적힌 제목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직원으로 일해보지 않은 사람은 창업해도 잘 안된다.”

직원으로 일하면서 그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이 없이 바로 경영권을 가진다면 결코 건강한 창업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간혹 성공한 케이스가 있겠지만, 수년간 청년창업과 관련하여 주변에서 보여지는 결과들을 조금이라도 유심히 본다면 나의 말에 동감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일부 정치인들이 내거는 사회주의적 요소의 포퓰리즘을 극혐한다. 수년간 그렇게 훈련이 된 국민들은 그저 무슨 일만 있으면 “지원금” 타령을 한다. 정말 지원금이 필요한 저소득층 사람들은 그런 불만의 소리마져 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국가의 지원금은 모두 국민이 내는 세금

다 아는 이야기인데, 굳이 오늘 이렇게 블로그에 남겨두는 것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아, 그때 이랬었지?’라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한 기록용이다. 국민이 모두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돈을 그저 지원금 명목으로 받는 것에 익숙해진 국민이 아닐까 싶다.

물가가 오르고 있다. 지난 정부가 수백조의 돈을 뿌려댔으니 당연히 겪는 인플레이션현상에다가, 국제적으로 오른 금리와 유가의 영향으로 글로벌 물가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

사회주의화되어가는 우리사회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간에 완벽한 사회는 없다. 나는 최근에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사회를 이루며 문명사회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돌이켜 보곤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지구위에서 살아가는 동물 중에서 최상 포식자 위치에 있다. 인간을 상대할 동물은 없다. 그런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스스로 “힘들다.”라고 말한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욕망의 사회 속에서 그저 자신의 앞에 떨어질 “떡”만 바라보고 살기 때문이다. 땀과 피를 흘려가며 동물들 사이에서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가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던 동굴에서 살던 우리의 조상들을 돌이켜보곤 한다.

인생은 고해(苦海)이다.

농경사회의 우리 선조들은 이미 인생 그 자체가 힘든 여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발전된 문명사회라고 할지라도 생로병사의 시간을 겪어여 하는 인간에게는 삶 자체가 고해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더 나은 삶이 “경제적 부흥”으로 오던가? 지금의 우리사회는 예전의 왕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산다. 더 아늑한 곳에서 더 편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들 “힘들다”, “죽겠다” 등을 남발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동물은 배고프면 사냥하고, 배부르면 초원에서 잔다. 본능적인 행동의 연속이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 중에서 딱한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에서 할 수 있는 상상력은 동물과 다른 삶을 살게 했다. 문명사회를 만들며 과학을 발전시켜왔다. 예전에 상상했던 미래는 이미 도달했고, 그 상상을 넘은 수준에 이르고 있고, 더 발전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이런 사회에서 언제까지 스스로 낸 세금을 갉아먹는 삶을 살 것인가? 진정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약자들이다.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 앞에 떨어질 “떡”만 바라보지 말고, 이런 약자들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약자들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자신을 보라는 것이다. 왜 이 땅에 머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말이다. 이 땅에 온 이유,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할 자신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면, 요즈음 우리사회에 팽배한 “게으름”과 “나태함”, “무력함” 등에 대한 자성의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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