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늦동이가 태어났다. 어머니가 40세가 되는 해에 말이다. 나와는 10살의 나이차이가 나는 여동생이다. 쌍둥이 여동생이 죽은지 6년 가량 지난 후였다. 학교에서 다녀오니 동생이 태어나 있었다. 우리집 형제들은 모두 우리집에서 낳았다. 형은 임회면 광전리에 있는 할아버지댁에서 낳았고, 첫째와 둘째 딸은 초가집(약방이 있던 양철지붕집 바로 옆에 붙어 있던 집으로 나중에 거기에 새로운 집을 지었다. 나중에 ‘접도구역’ 이야기에서 나올 것이다)에서 낳았고, 나는 약방이 있던 양철지붕 집에서 낳으려다 낳지 못하고 다시 그 초가집으로 옮겨서 낳았고, 세째 딸과 쌍둥이 딸들은 모두 양철지붕집에서 낳았다.
막내는 초가집 자리에 지은 새집에서 낳았다. 막내가 태어난 다음날 어머니는 신경이네 할아버지(신경이는 나보다 2학년이 빠른 동네형이었고, 그 동생 경란이가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를 모셔오라고 했다. 신경이네 할아버지는 키가 매우 작았으나 얼굴엔 지혜가 넘쳐보이는 그런 분이셨다(신경씨는 현재 국립대 교수로 재직중이고, 경란씨도 학교 선생님이다.).
어머니는 보자기에 싼 무엇인가를 신경이네 할아버지에게 건내셨고, 할아버지는 집에 있던 삽과 보자기를 들고 집앞 신작로를 가로질러 간척지 논쪽으로 걸어갔다. 우리동네 앞에 있던 논들은 모두 바다를 막아 만든 매우 넓은 간척지였다. 아무튼 논을 몇개 지나 주위를 둘러보던 할아버지는 논두렁 밑을 파셨다. 그리고 거기에 보자기에 쌓인 것을 묻으셨다.
태반이었다. 막내를 낳으면서 나온 태반이다. 막내가 뱃속에 있을 때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해 주던 바로 생명줄 태반이었다.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갔던 나는 매우 궁금했다. 집에 온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왜 그것을 할아버지가 묻어야 하죠?”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몸에서 나온 것을 함부로 버리거나 묻으면 안되고 자리와 방향을 봐서 묻어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신경이네 할아버지는 풍수지리를 아셨던 분이었던 것 같다. 언제 경란씨나 신경씨를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풍수지리나 미신을 떠나 인체에서 나온 태반이 혐오스러울 수도 있고, 썩으면 또다른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잘 처리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내가 발생학에서 태반의 형성과정을 가르치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귀한 기억이고 추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