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풍금이 있었다. 학교에도 단 하나밖에 없어서 수업시간 마다 4명의 학생들이 들고 옮겨다녀야만 했던 바로 그 풍금이다. 당시에는 학교에 음악실이 따로 없어서 음악시간마다 그 반 아이들이 풍금을 들고 옮겨다녀야 했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풍금이 있었다.
몇학년때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4학년이나 5학년 때 일수도 있다) 아버지께서 광주에서 주문을 한 후에 벽파(광주에서 오던 버스가 차량이 그곳에서 철선을 타고 건넜다. 진도대교가 생기기 전이기 때문에)에서 사람을 사서 지게에 짊어지고 옮겨왔다(희종이 아버지라는 동네 어른이셨다).
풍금과 기본교본 하나가 고작이었다. 발로 페달을 눌러서 바람을 넣으면 그 바람이 소리를 만들어내는 그런 고전적인 풍금이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교본을 보고 눌러보았지만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상태로 풍금은 집안의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소리도, 상태도 모두 학교에 있는 것 보다는 좋았지만 제대로 연주할 사람이 없으니 장식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 결코 싸지 않은 물건이었을텐데 아버지께서 자식들 누군가라도 연주를 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구입하셨던 것 같다. 나중에 큰 누나가 목포에 살던 시절에 갖고 있었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글을 쓴 후에 누나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소장하지 않고 있고 풍금은 “아리아오르간”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