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다가오면 언제나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바로 “솔방울 줍기”이다. 모두 산에 올라가서 각자 가져온 보자기에 솔방울을 싸가지고 산을 내려와야 한다. 당시에는 그 일이 참으로 하기 싫은 일이었다. 추운 겨울날씨에도 몸에 땀이 베일 정도로 열심히 온 산을 뒤져 솔방울을 주어왔다.
솔방울을 전교 학생들이 주어오니 그 량이 엄청났다. 교사 뒤편 관사 옆에 있던 창고에 그것을 보관했다. 굴러다니는 솔방울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지 않고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경사진 상태로 쌓였다. 따라서 나중에 가져온 아이들의 솔방울은 더 안쪽으로 깊이 던졌지만 윗쪽에서 아래로 흘려내려오듯 쌓이곤 했다.
그 솔방울은 겨울방학동안에 일직(낮에 근무)을 하는 선생님을 위한 것이었다. 방학때는 남자선생님들은 일직과 숙직을 하고, 여자선생님들을 일직만 담당했다. 아마도 방학동안에 한두번 진도에 내려와 근무를 했다. 일부는 진도가 고향인 선생님도 계셨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광주나 목포에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렇게 방학동안에 일직과 숙직을 하는 선생님의 난방을 위한 연료 조달을 학생들이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런 식의 일종의 노력은 송방물 뿐만 아니었다. 학교에 시멘트 공사를 할 일이 있으면 학생들이 집에서 비료포대를 가져와 용인리 바닷가에서 바닷모래를 퍼서 들고 왔다. 먼 거리를 걸어서 모래를 들고 오는 기억은 내게는 참 힘든 일이었다.
퇴비증산을 한다고 풀을 베어와서 학교마당에 높이 쌓은 일도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퇴비가 어떻게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까칠까칠한 풀들이 땀과 함께 내 얼굴이나 팔에 붙었던 기억은 결코 상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겨울에 연료를 땔만한 운영비도 없었던 교육환경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교육비를 수조원씩 쓴다는 지금도 중고등학교 교실은 춥고 덥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