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90] 충약과 충치약

By | 2014년 9월 23일

가끔 마을에 약장수들이 온다. 밤에 횃불(철사에 달린 솜뭉치에 기름을 뭍혀서)을 켜고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간단한 마술에서 춤사위까지 다양한 볼거리이니 사람들이 몰려온다. 어두운 밤에 횃불만이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한참동안 볼거리를 보여 준 후에 드디어 비장의 카드를 내놓는다.

“해남에 사는 21살 먹은 처녀가 배가 불러오자 부모들은 임신을 했다고 딸을 쫓아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뱃속에 충이 수십마리 들어 있었다. 충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또 영암에 사는 할머니는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충이 창자를 뚫고 복강으로 들어가서 살고 있었다.” 등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쏟아낸다. 그리고 나서 “지금 대변을 볼 수 있는 사람 있으면 한 명만 나와 달라. 그런데 먼저 약을 좀 먹일테니 먹고 굿 좀 더 보다가 대변을 보면 된다”라고 설명을 한다. 신기하게도 자원자가 있다. 먼저 서로 짠 것인지 아니면 진짜 약효과를 보기 위해서 확인하려고 나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면 볼거리는 계속된다. “자, 이제 혹시 이빨이 썩어서 충치가 있는 사람 한사람만 나오세요”라고 말한다. 몇명이 손을 들지만 한 명만 선택되어 나온다. “자 이 약을 솜에 약간 묻혀서 물릴테니 5분만 물고 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10여분 후에 “자, 조심이 이 종이에 뱉어요”라고 말하자 그 사람이 솜을 뱉는다. 하얀 솜에 검은색 무언가가 묻어 나온다. 새끼 손톱만한 시커먼 덩어리이다.

“자, 보시오. 충치가 그냥 충치가 아닙니다. 이렇게 속이 완전히 썩어서 그렇게 아픈 것입니다. 이렇게 약을 솜에 묻혀서 10분만 물고 있으면 썩은 것이 이렇게 싹 빠집니다.” 이렇게 설명하자 여기저기서 “와~!”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횃불을 밝혔지만, 사실 누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그런 리액션을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다시 “자, 아까 충약 드신 분 이 칸막이 뒤에서 볼 일을 좀 보세요”라고 그 사람을 칸막이 뒤로 보낸다. 대변을 보는 것 같다. 그 사람을 향해 “변이 잘 나옵니까?”라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배에 힘을 주다가 “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한 패인 사람이 그 대변을 종이에 받아서 나온다. 거기엔 놀랍게 회충이 몇마리 있다.

“자 보세요. 이렇게 누구에게나 충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정말이구마이!”, “와~! 충이 맞당께”, “저것이 정말 충이여?”. “무섭꾸마이” 등 많은 말들이 쏟아진다. 그러면 사회를 보는 사람이 다시 나선다.

“자, 오늘 우리가 떠나면 언제 올지 몰라요. 우리를 오라고 하는데가 너무 많아서 여긴 1년 뒤에나 올지 몰라요. 오늘 여기에 약을 드리고 가면 기약이 없어요”라고 다그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충약과 충치약을 산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옆사람에게 돈을 빌리기도 한다.

그렇게 약장수들의 쇼는 끝이 난다. 그 뒤로 충약이나 충치약 효과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그 때 어떤 사람이 뱉었던 충치에서 나온 시커먼 것과 대변에 섞여 있던 충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런 야바위꾼들은 경제대국의 대한민국에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