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92] 버스가 끊겼어요

By | 2014년 9월 23일

우리집 앞을 지나는 버스는 진도읍을 출발하여 오일시(5일 장이 서는 마을이름)를 거쳐 세등까지 온다. 세등에서 Y자의 길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벽파진을 가게 되고 왼쪽으로 가면 녹진항을 가게 된다. 우리동네 앞을 지나는 버스는 당연히 진도읍과 녹진항을 오간다. 그런데 가끔 버스가 끊기는 때가 있다. 바로 겨울이다.

추운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세등에서 Y자로 갈라진 왼쪽길을 내려오지 못한다. 세등은 작은 재(언덕)이다. 지금은 길도 넓혔고, 길의 각도도 많이 낮아졌지만 당시에는 고개를 넘은 느낌이 있는 그런 길이었다. 세등을 넘어 둔전저수지쪽으로는 북향이다. 즉, 세등이 더 남쪽이다. 따라서 겨울에 북풍과 함께 눈보라가 치면 그 눈이 모두 북쪽 길에 눈이 쌓이게 된다. 눈이 깊어서 차 바퀴가 빠질 뿐 아니라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버스는 세등리에서 바로 유턴을 해서 읍내로 가버린다.

세등리에서 녹진항까지의 버스노선이 없어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집이 있는 장언리는 세등리 다음 마을이다. 따라서 눈이 많이 와서 버스가 세등리에 멈추면 걸어서 와야 한다. 추운 겨울 눈보라를 맞으며 짐을 들고 걷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직접 그것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눈길을 걸어와야 했었다.

어느 추운 겨울 읍내에 사는 이모네 아들인 형국이형이이 우리 형과 함께 그렇게 집에 온 적이 있다. 그렇게 떨며 걸어 집에 도착한 후에 바로 아랫목에 바로 손을 넣으면 동상이 걸린다면서 그냥 손만 열심히 비벼대던 때가 생각난다. 눈보라를 헤치고 온 자랑스러움과 의기양양함과 함께 말이다.

겨울이 되면 늘 그럴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하며 살았던 시절의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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