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난 법원 옆에서 살았다

By | 2015년 4월 18일
네이버 지도 캡쳐

광주고등법원이었던가? 광주광역시에는 법원이 있다. 당시에 법원이라고 하면 조선대와 산수오거리 사이에 있는 지산동에 있는 법원을 말했다. 집이 어디냐?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법원 옆”이라고 늘 대답했었다. 당시에 시골에 사셨던 아버지께서 자녀들이 학교다닐 때 살 집을 지산동에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다. 지산동에 있는 수많은 이태리식 주택(70년대 초에 지어진) 중 우리집이 있었다.

버스를 타는 곳이 바로 법원 정류소였다. 스쿨버스도 법원앞 광장(조그마한)앞에 정차했다. 그런 탓에 당시에 법원을 출입하던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당시에 많이 볼 수 있었던(아마도 눈에 띄였기 때문일 것이다) 장면은 법원 정문 앞 광장 길바닥에서 주저 앉아서 통곡하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내뱉는 말들이 거의 비슷했다.

“이게 법이냐?”, “누구 좋으라는 법이냐?”, “내 억울해서 못살겠네”, “이이고, 우린 어찌 살라고!”, 등등 어린 나의 눈으로 보아도 충분히 억울해 보이는 장면들이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가기 위한 모습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억울하게 빼앗긴 사람들의 통곡이었다.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곤 했었다.

대부분 문서상으로(법에 따라) 소유권이 잘 정리되지 않은 경우에 실소유자가 아닌 문서상의 소유자가 땅이나 재산을 빼앗아가는(그것은 분명한 도둑질이었다) 과정에서 재판을 하였고, 재판은 문서상 소유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결과로 그런 일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부모가 다른 사람의 논을 샀는데, 돈만 주고 받고 문서상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그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나중에 부모세대가 죽고나자 자식들세대에서 분쟁이 발생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사기사건도 있었었다.

안타까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이 무거웠던 그런 시절이 생각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법의 틈새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그럴 것이지만 말이다.

2 thoughts on “고등학생 시절, 난 법원 옆에서 살았다

  1. 김은영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도 똑 같을까요?
    아니 지금 더 심해지지 않았을까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 보았던 소년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네요.
    >> 케이프타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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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태 Post author

      안녕하세요. 김은영선생님.
      한국은 봄이 살짝…넘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봄 가뭄이 심한데 비가 아주 조금 내렸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또 뵙겠습니다.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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