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가슴이 먹먹해지는 518

By | 2015년 5월 18일

페이스북에 “8살된 자녀와 함께 광주에 가려고 한다. 이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라는 내용으로 글이 올라왔다. 그런 이유로 내 블로그에 518에 대하여 글을 쓴 것이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검색해 보니 “화려한 휴가(한국영화, 2007년작)”에 대하여 쓴 글이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던가? 둘째 아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감추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민주화항쟁에 참여한 민주투사도 아니었다. 그냥 당시에 광주에 살고 있었던 광주시민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게엄군에 의해 도청이 진압되기 전날 나는 광주를 떠났다. 모든 통신수단(라디오를 빼고)이 끊긴 광주에서 고향으로 가야만 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어른들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그 때까지 광주안에서 광주민주화항쟁의 일부를 목격했다. 도청 앞 광장에서 바리게이트를 치고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던(양영학원쪽으로) 직접 군인들을 보았다. 그 때 군중속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또 초등학생들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군인들이 총을 쏘자 그들과 함께 뒷걸음치며 도망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게엄군이 물러간 후에 가장 인상에 남은 장면은 칼빈소총을 들고 은행을 지키던 젊은이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광주시민들이 결코 폭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대목에서 찾는다. 무정부상태에서 완전하게 자치적 체제를 구축한 광주는 광주를 둘러싼 게엄군의 위협속에서 그렇게 광주를 지켜나갔다.

오늘 굳이 블로그에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왜곡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무기징역을, 노태우는 17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것이 국가가 그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내린 벌이다. 그것이 사실이고 역사이다. 다시한번 518을 이해할 수 있는 동영상을 가져와 본다.

518의 공식명칭은 “5.18 민주화 운동“이다.

2 thoughts on “다시금 가슴이 먹먹해지는 518

  1. 김은영

    당시 현장을 그대로 목격 하셨군요.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을텐데요.
    오늘 아침 딸 아이에게 518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 보지 아이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들었을까요?
    과연 그날의 진실은 얼마나 밝혀졌을까요?
    그 때의 가해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답답해 집니다.
    >> 케이프타운에서

    Reply
    1. 김형태 Post author

      역사적으로 보면 민중들이 그렇게 죽었갔던 때가 있었죠.
      광주도 그런 역사의 한페이지이구요.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역사가들이 다시 평가해줄 것입니다.
      그 때가 된다면 가해자들은 이미 저 세상에 가있겠지요.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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