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독백

By | 2016년 7월 9일

이 글은 창세기에 나와 있는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이 그의 아비 야곱을 애굽으로 초청하여 고센 땅으로 오게 한 후, 자신도 고센을 향해 마차를 타고 갔습니다. 고센으로 가는 도중에 그 동안의 삶을 돌아다 보는 요셉의 고백을 담은 것입니다. 성경을 바탕으로 쓴 글이지만, 재구성하였고 저의 상상을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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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수레를 타고 고센으로 가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 야곱과 모든 형제와 조카들까지 70여명이 가나안으로 부터 오고 있습니다. 형제들은 이미 보았으나, 아직 조카들은 보질 못했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나는 그들을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가나안을 떠나온지 어언 2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다시 아버지와 모든 가족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창46:29)

얼마전에 형제들이 와서 제게 엎드려 절을 할 때, 저는 제가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말입니다.(창 42:9)

그렇습니다. 제가 애굽으로 팔려 오던 때부터 저는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저는 처절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니깐 22년전 형들은 저를 죽이려고 저를 큰 구덩이에 넣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칠 때, 아버지는 저에게 형들이 머물고 있는 세겜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창37:13-14) 그런데 세겜에 가보니 형들이 없어져서 한 참 길을 헤매였는데, 어떤 좋은 분들 만나 형들이 도단으로 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창37:15-17) 다행히 형들을 만나서 “형, 저 왔어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저의 옷을 벗기고 저를 큰 구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창37:18-24) 사실 그 때만해도 저는 형들이 장난을 치는 줄 알았어요. “형들, 왜이래? 빨리 나를 꺼내 줘요”라고 소리쳤어요. 사실 그리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우물 속에는 물도 먹을 것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우물 밖에서는 형들이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말이예요. 그런데 유다 형이 다른 형들에게 저를 죽이는 것 보다는 상인들에게 팔자는 거예요. 죽이는 것 보다는 더 낫지 않겠냐고 말하는 겁니다.(창37:25-27) 얼마 지나지 않아 미디안 상인들이 도착했을 때, 형들은 저를 우물속에서 꺼내주었어요. ‘이제 살았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형들은 은 이십개를 상인들에게서 받는 것을 보았어요. 그리고 저는 바로 그들의 손에 넘겨졌어요. (창37:28)

저는 형들을 향해 소리쳤어요. “형, 형, 유다형, 르우벤형, 형, 형, 내가 잘못했어요. 날 구해줘요. 형 이러지 말아요. 형~~~”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사막의 먼지가 그들을 가렸어요. 형들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17살이었던 나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어요. 처음엔 형들이 미웠고 원망스러웠어요.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애굽으로 끌려가는 동안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생각했어요. ‘내가 여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만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다. “고 말이죠.

애굽으로 가면서 큰 형인 르우벤이 가장 많이 생각났어요. 형하고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생각해 보니 르우벤 형은 저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어요. 죽이지 말고, 그냥 구덩이에 던지자고 했어요. 일단 제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은 벗어나게 했거든요. 그리고 구덩이에 두면 짐승에게 공격을 당하거나 굶어죽었을 수도 있는데, 유다 형이 저를 상인들에게 팔자고 했어요. 유다 형도 제가 죽는 것보다 노예라도 되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창37:22) 르우벤 형 유다 형을 생각하며 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어요. 언젠가는 아버지와 르우벤 형을 볼 날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제게는 큰 위안이 되었어요.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가는 길은 제게도 멀고 험한 길이었어요. 애굽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보디발이라는 장군의 집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창39:1) 그 집은 크고 으리으리했어요. 저와 같은 종들이 많았는데, 저는 신참인 셈이었죠. 그러나 그 집에는 먹을 것이 풍족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매우 잘 해주었어요. 특히 보디발 장군은 저를 예쁘게 봐 주시고 잘 해주셨어요.(창39:2-3) 사실 노예로 팔려서 오던 중에 저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음식도 넉넉하게 주지 않았고, 낮은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먼지나는 길을 계속 걸어야 했고, 밤에는 엄청 추웠거든요. 들짐승이 무섭기도 했구요. 다행이도 몸값을 제대로 받기 위함인지 굶기지는 않았어요. 그 때에 비교하면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사는 것은 매우 행복한 시간들이었어요.

팔려오는 도중에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사실 그전에 그렇게 간곡하게 기도해본 적은 없었어요. 사막의 밤시간도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를 이 땅에서 살려주세요. 다시 아버지와 어머니, 다른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지금까지 제가 형들에게 잘못한게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아버지가 저를 편애한 것 때문에 제가 함부로 형들을 대했어요. 형들의 일을 아버지께 고자질도 많이 했었구요.” 아마도 이 때부터 지금까지 기도하는 습관이 제 몸에 벤 것 같아요.

지금 고센으로 가고 있는 제 마음속에 그 기도했던 때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왜냐면 그 때 기도했던 제목들이 곧 이루어지니까요. 사실 그렇게 기도하고서도 내가 어떻게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고센에서 아버지와 형제들, 조카들까지 모두 볼 수 있으니, 그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보디발 장군을 저를 아주 예뻐해 주셨어요. 그런 이유로 저는 주인을 아주 잘 모셨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실 20대인 저에게 그 집안 살림을 모두 맡겨주었으니 보디발 장군이 저를 신뢰해준 것이죠. 그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저는 더 열심히, 더 정직하게 살았습니다.(창39:4-5) 다만, 남자인 저에게 음식하는 것은 시키지 않았습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남자노예들도 있었지만, 저는 전체적인 살림만 맡기셨어요.(창39:6)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장군의 아내가 사람의 눈을 피해 저를 자꾸 부르는 겁니다. 부르는 횟수가 많아졌을 때 비로서 저는 그게 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어요. 다른 종을 항상 제 옆에 있게 하였고, 둘이서만 있게 되는 상황은 가급적 피했습니다. 저는 저를 믿고 예뻐해 주는 보디발 장군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어요. 또한 무엇보다도 제가 애굽으로 올 때 매달렸던 하나님 앞에 범죄하면 안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느날 보디발의 아내는 집안에 아무도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저를 유혹했어요. 저를 붙잡길 때 뿌리치고 나오는데 제 옷을 잡더군요. 옷을 버려두고 나왔어요.(창39:12)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자 제 옷을 들고 사람들에 상황을 이야기하는 겁니다.(창39:13-15) 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변명한다고해도 노예인 저는 장군의 아내에게 항변할 수가 없었거든요. 답답했지만 노예인 저는 그 집의 물건과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총무로 일하면서 제가 노예라는 것을 잠시 잊고 살았어요. 아무것도 아닌 노예의 신분인데 말이죠. 순간, 나는 애굽으로 팔려오던 그 사막의 길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어요. 멀고 험난한 길을 오는 동안 기도했던 저의 모습과 하나님을 떠올렸어요.

저녁 때가 되어 보디발 장군이 오자, 장군의 부인은 다른 종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시작했어요.(창39:16-19) 보디발 장군은 정말 화가 많이 났었죠. 보디발 장군은 저를 감옥에 넣었어요.(창39:20) 사실 그 때는 죽은 목숨이었죠. 보디발 장군이 칼로 제 목을 친다고 해도 저는 그저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는데, 감옥에 보내는 겁니다. 그것도 일반 감옥이 아닌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말입니다. 화가 많이 난 보디발 장군이었지만, 수년간 저를 예뻐해 주셨던 보디발의 마지막 저에 대한 배려였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죽지 않고 감옥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감옥안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굳은 일들을 도맡아서 했는데 어느날 간수가 저를 부르는 것입니다. “요셉, 너를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왜 보디발 장군이 너를 죽이지 않고 이렇게 감옥에 넣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오늘부터 너는 이 곳에서 총무의 일들을 맡아서 하라”라고 말이죠.(창39:21-23) 저는 갑자기 가나안 땅의 가족들이 생각났어요. ‘이렇게 살다보면 우리 가족들을 만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비록 감옥이었지만 저는 나름대로 저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어요. 일도 재미있고, 감옥에 있는 다른 죄수들과도 친해졌어요. 물론 죄질이 나쁜 죄수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억울하게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도 억울하였지만 노예인 저는 억울해할 수 없는 처지였죠. 그리고 감옥에는 높은 직책을 했던 사람들 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어요. 그 중에 제가 젊은 편이었는데, 총무일을 하고 있으니 그들과 잘 지낼 수 있었어요. 다 감사할 일이죠.

그렇게 감옥에서의 삶이 어느 정도 적응되고 있을 때 두 사람이 감옥에 오게 되었어요. 그들은 왕에게 술과 떡을 제공하는 일을 맡는 왕의 측근에 있던 사람들이예요. 제가 있던 감옥이 시위대장의 집안에 있는 감옥이었어요.(창40:3) 그들이 왕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왕이 노발대발했다고 하니 감옥에 올 수 밖에 없었죠.(창40:1-2) 아마도 직접 잘못을 한 것인지, 아래사람들이 잘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높은 직책에 있던 분들이죠. 그들이 처음에 왔을 때 시위대장이 제게 그들을 잘 모시라고 했어요. 따라서 나는 그들을 정성으로 모셨습니다.(창40:4)

그런데 어느날 그들 중 술맡은 관원이었던 이가 근심에 쌓여있는 것입니다.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제게 꿈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꿈이야기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많이 해주셨거든요. 아무튼 저는 그의 꿈이야기를 자세히 들었어요.(창40:5-11) 그런데 어찌 영문인지 저는 그 꿈이 어떤 내용인지 생각이 나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에게 곧 복직이 될 것이라고 말했어요.(창40:12-13) 사실 저는 해몽가는 아닌데, 그의 이야기를 듣던 중 그런 확신이 왔어요. 저는 그에게 부탁을 했어요. “당신이 나가게 되면 저를 꼭 꺼내주세요. 저도 억울하게 여기에 들어왔어요”라고 말이죠.(창40:14-15) 아마도 그 때 처음으로 제가 억울하게 들어왔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 한 것 같아요. 사실 노예신분인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되었죠. 감옥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긴 하죠.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떡을 맡은 관원이 자신도 꿈을 꾸었다며 해몽을 해달라는 겁니다.(창40:16-17) 그런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꿈은 흉몽이었어요. 감옥에서 총무일을 하고 있었지만, 노예신분인 저로서 사실대로 이야기했어요. 그가 죽게 될 것이라는 나쁜 소식을 전했어요.(창40:16-19)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제게 엄청 많은 화를 냈어요. 감옥 밖이었다면 저는 그의 손에 죽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정말 소름끼칠 일이 일어났어요. 3일 후에 왕이 두 관원을 석방시켰어요. 아마도 잔치에서 그들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죠. 사람들이 제게 와서 이야기했어요. “요셉, 자네 말대도 되었네. 술맡은 관원은 복직되었고, 떡맡은 관원은 교수형에 처해졌네.”.(창40:20-21) 자네는 어떻게 그걸 알게 되었는가?”라며 제 어깨를 툭툭 치는 겁니다.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어떻게 제가 그런 꿈을 해몽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순간 저는 술맡는 관원에게 부탁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그러나 그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요.(창40:22-23)

솔직히 술맡는 관원이 풀려나고 복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 내 기도가 응답되는구나! 이제는 살아나갈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했거든요. 그러나 그동안 노예로 살아온 시간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어요. 형들이 나를 버렸던 일, 노예로 팔려가며 더위와 추위, 배고픔을 겪었던 일, 나에게 잘 대해 주었던 보디발 장군, 나를 모함한 보디발의 부인, 나를 신뢰해 준 간수 등이 주마등처럼 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던 생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있다’라는 것이었요. 제가 애굽에 팔려오면서 사막을 걸으며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죠. “하나님 저를 살려주세요. 살려주셔야 제가 다시 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요”라고 말이죠. 비록 감옥안이지만 저의 목숨이 붙어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죠. 그리고 감옥에서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감옥을 나가고 싶어요. 나가봤자 노에의 신분이긴 하지만, 감옥을 나가야 저의 억울함도 조금은 해결이 되기도 하구요. 그 때 제 나이가 28세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2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어요.(창41:1) 그런데 어느날 바로 왕이 저를 부른다는 거예요.(창41:14) 사실 저는 반복되는 삶에 많이 지쳐 있었어요. 스스로 다짐한대로 열심히 살긴 했지만 감옥에서의 삶은 너무 반복적인 삶이었죠. 그 날도 수염도 깎지 않은 상태로 초췌한 모습으로 사무를 보고 있었는데, 왕이 부른다고 하니 부랴부랴 준비하고 왕에게 갔어요. 면도도 하고, 옷도 새로 갈아 입고 말이죠.(창41:14) 왕궁에 도착하자, 왕이 자신이 꾼 꿈을 해몽해 달라는 것입니다.(창41:15-24) 그래서 저는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대로 왕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창41:25-31) 그런데 해몽을 한 뒤에 저는 왕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사실 노예이자 죄수인 제가 왕에게 조언을 할 형편은 못되었지만, 해몽에 따른 해결책을 내놓은 것입니다.(창41:32-36)

왕과 옆에서 듣고 있던 신하들이 저의 해몽에 놀라며, 또 기뻐하는 겁니다. 왕은 바로 제가 해결책으로 내놓았던 것을 제게 맡기시는 겁니다. 죄수이며 노예인 저를 발탁해서 총리로 세운 것입니다. 사실 저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대로 해몽을 해주었을 뿐인데 말입니다.(창41:37-45) 왕은 자신의 인장반지를 빼서 제게 끼우고 세마포옷을 제게 입히고 금목걸이까지 걸어주었습니다.(창41:42) 이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어요.

더 놀라운 일은 왕의 꿈대로 7년간은 풍년이 들었고, 지난 2년간은 흉년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제 39살이 되었습니다. 총리가 되고 나서 저는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낳았습니다. 제 아내는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입니다.(창41:50) 두 아들의 이름은 므낫세이고 둘째는 에브라임입니다. 사실 큰 아들을 낳았을 때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으로 므낫세라고 지었죠. 사실 에굽에 온지 20년 정도 되니 그 동안 모든 고생했던 일들이나 고향과 아버지와 형제들을 잊어버리게 되었거든요. 형제들에 대한 원망도 미움도 사라졌죠. 빡세게 살아온 20여년의 세월이었으니까요.  둘째를 낳자 하나님께 더 감사했어요.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라는 뜻으로 지었어요. 두 아들을 낳았을 때는 풍년이 들던 때였죠.(창41:50-52)

그리고 2년전부터 무서운 흉년이 시작되었죠. 사실 왕의 꿈대로 풍년이 들었던 7년간 저는 각 성에 수많은 창고를 지었고, 곡식을 계속 저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풍년은 이전에 없었다고 다들 말하곤 했죠. 아마도 거의 두 배 이상씩 거두었으니 흉년이 든다고 해도 그 정도 기간은 충분할 수준이었죠. 그런데 그런 흉년은 애굽 뿐만 아니었어요. 주변 땅에도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그동안 창고와 곡식을 관리하느라 잊고 있었는데, 내 고향 가나안 땅도 예외는 아니었을 겁니다.(창41:57) 애굽에는 그동안 저장해 놓은 곡식을 사람들에게 공급하기 시작했어요. 소출이 없으니 그렇게 저장해 놓은 곡식을 팔아서 사람들이 살도록 하였죠.(창41:56)

그런데 흉년이 시작된지 2년이 되자(창45:6) , 가나안 사람들이 곡식을 사러 왔어요. 그런데 그들 중 제 형들이 있는 것입니다. 형들을 20년이 훌쩍 지난 후에 보게 되었죠.  형들은 당연히 저를 못알아 보았지만 저는 형들을 대번에 알아 보왔죠. 나이가 들긴 했지만 말입니다.(창42:7) 그 순간, 저는 까막득히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어요. 제가 어렸을 때 꾸었던 바로 그 꿈이예요. 내 곡식단이 일어나고 나머지 형들의 곡식단이 절하였던 바로 그 꿈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했던 꿈 말입니다.(창37:5-11) 절을 하고 있는 형들을 보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진 줄 알았던 그 꿈이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창42:9)

그동안 살아남으려고 발버퉁쳤던 때 부터 왕의 은총을 입어 총리로서 일하게 된 모든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순간 저는 아버지와 가족들을 모두 만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한 꾀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들을 스파이로 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 밑으로 동생하나가 더 있다는 것입니다.(창42:13) 순간 한가지 더 꾀를 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두어 버렸습니다. 3일 동안이나 말입니다.(창42:7) 그리고 형제 한 명을 남게 하고 곡식을 주어서 보내려고 하는데 그들이 히브리 말로 대화를 하였어요. 내가 애굽사람이라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내 이야기를 했어요. 그들이 나를 상인들에게 판 이야기를 말이죠. 그 죄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20년이 넘었지만 그들이 했던 죄에 대하여 그들은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 있었던 것이죠.(창42:20-23)

아무튼 그들 중 시므온 형을 남게 하고, 곡식과 또 곡식을 사려고 가져왔던 돈을 다시 자루에 넣어서 그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울었습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형제들과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기 때문입니다.(창42:24-25).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막내가 있다고 하니 어머니들 중 가장 젊은 나의 친엄마가 낳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열둘째 아들은 나의 친 혈육이 아니런가 말입니다.

그런데 시므온 형을 애굽에 볼모로 잡고 있는데 형들이 안오는 겁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막내까지 잃을까봐서 갈등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가족사를 줄줄이 고하는 바람에 막내까지 있다는 것까지 말한 것 때문에 형제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창43:6-7) 아마도 열한번째인 저를 잃는 슬픔이 아직도 아버지에게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창42:36)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그들이 다시 애굽에 왔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시켜 집에서 그들과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고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들은 계속 두려워하고 떨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해코지를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같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지난 번 곡식과 함께 돈이 자루에 들어 있었던 것에 대한 해명을 했다고 하네요.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안심시키고, 시므온 형까지 그들에게 데려다 주었다고 하네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그들에게 갔습니다.  그 때 저는 처음으로 동생 베냐민을 봤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내가 네 형이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방에 들어가 한참 울고 나왔습니다.(창43:26-30) 그리고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마당에는 애굽사람들이 먹을 탁자와 형제들이 먹을 탁자가 따로 준비되었습니다. 애굽사람들은 히브리사람과 식사를 절대로 같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창43:32) 저는 형제들을 순서대로 앉게 했습니다. 세월이 지난 탓에 형제들을 잘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하는 저를 집에 일하는 사람들이 힐긋힐긋 쳐다 봅니다.(창43:33) 저는 자연스럽게 베냐민을 자꾸 챙기고 있었습니다. 형제에 대한 생각은 그런가 봅니다.(창43:34)

형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 했지만 저는 다시 꾀를 내었습니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계략을 꾸민거죠. 여러분이 다 아시는 이야기죠. 제가 곡식자루에 저의 은잔을 넣도록 했습니다. 그것도 베냐민의 자루에 말이죠.(창44:1-18) 그리고 그들로 하며금 떠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중에 베냐민을 볼모로 잡아 두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막내와 아버지를 위해 자신들이 볼모로 잡히겠다는 것입니다. 나를 애굽에 상인들에게 팔았던 그 형제들이 말입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형제들이 모습에 저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습니다.(창44:19-34)

저는 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바깥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입을 막으려고 해도 울움이 터져나왔습니다. 아마도 내 집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창45:1-2) 앞에 죄인들처럼 서있는 형제들은 어리둥절하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은잔을 숨겨서 가려는 자신들 앞에서 갑자기 대성통곡이라니… 놀랄 수 밖에 없었죠. 내가 그들 앞으로 한발자욱 다가 섰습니다. 그들이 한걸음 뒤로 물러 섭니다. 놀라서 멍하니 서 있는 그들에게 내가 말합니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는 살아계신가요?”라고 말이죠. 형들이 아무 말고 못합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창45:3)

놀라서 아무 말고 하지 못하고 있는 형들에게 가까이 오게 하고 내 얼굴을 보게 하고 설명을 해줍니다. 그리고 그 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신앙고백을 형들에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형들보다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2년간 흉년이었지만 앞으로 5년 더 흉년이 들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의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서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빨리 가나안으로 가서 아버지와 모든 식구들을 모시고 오십시요”.(창45:5-13)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베냐민을 부여잡고 울었습니다.  베냐민도 울고, 다른 형들도 울었습니다. 사실 애굽으로 팔려오던 사막의 길에서 저는 형들에 대한 원망을 모두 버렸습니다.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동안에 나는 그 사건을 비롯해서 많은 일들을 잊고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버니 가족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게 살았습니다. 노예로 살아온 인생의 시간들, 그리고 총리로서 살 때에도 그렇게 바쁘고 성실하게 나에게 주어진 일에 매달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동생 베냐민도 만나게 되었고, 이제는 성숙해진 형제들도 모두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만 만나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고센으로 가고 있습니다. 고센은 앞으로 우리 가족들이 가뭄을 이기며 살 땅입니다. 그 땅으로 달려가면서 그 동안의 세월들을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17살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와서 30세가 되도록 보디발의 집에서 살았고, 감옥에서 2년 넘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총리로서 9년째 치리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 고센에 가면 모든 가족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를 애굽으로 인도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저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저는 꿈쟁이가 아닙니다. 저는 어렸을 때 꿈을 꾸었을 뿐입니다. 누구나 꾸는 꿈이죠. 그 꿈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아니라는 뜻이예요. 제가 그 꿈을 통해서 총리가 된 것은 아니예요. 저는 제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다보니 결과는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애굽땅에서 노예로 살면서 꼭 살아서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저를 생존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가 오늘의 모습이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어렸을 때 꿈이 생각이 났다면, 그리고 그 꿈의 해석이 내가 장차 총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면, 아마도 저는 감옥에서 죽었을지도 몰라요. 특히 술을 올리는 관원이 저를 까막득이 잊고 있었던 2년의 세월은 더욱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살아온 과정은 오늘날 처럼 이렇게 총리로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hope)도 아니었고, 미래의 비전도 아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22년의 세월을 살아온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세월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곧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4 thoughts on “요셉의 독백

  1. 여름나무

    많이 피곤하다며 저녁 늦은 시간에 헤어지신 분이 언제 이 글을 쓰셨당가요..?ㅎ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스토리입니다만
    요셉의 독백을읽다보니
    감정이입이 되고
    요셉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가솔들을 모두 내보내고
    목 놓아 우는 장면에서는
    제 눈에도 눈물이 가득해집니다.

    본문과 함께 장로님의 글을 읽어 함께 나누어도 한 편의 멋진 설교에 필적할 것입니다~ㅎ

    요셉이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형제를 다시 만나겠다는 의지를 붙들고 산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 가지요.

    사람들은 그것을
    희망이라고도 하고
    꿈이라고도 하고
    목표라고도 하고
    집착이나 애착이라고도 하며
    간혹 (대부분일수도) 구체화 시키진 못하는 많은 이들도
    생명과 삶에 대한 기본적인 생존본능이라도 붙들고 살아가지요.

    그리고 흔히들
    지나 온 길을 돌아 보면서는
    바로 그거였노라고 고백들을 하곤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님이시지요.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신 이도
    총리로 세우신 이도

    저를 포함한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있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 이가
    하나님 그 분이시지요.

    그분이 하셨습니다.

    아멘입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원목사님이 가장 듣기 좋아하시는 인사말이지요..?ㅎ)

    감사합니다~^^

    Reply
    1. 김형태 Post author

      좀 더 각색을 한다면….
      1인극으로 올려도 괜찮지 않을까요? ㅋㅋ
      댓글 고맙습니다.

      Reply
  2. 최숙자

    와우,생생한 드라마 한편 보는 듯 합니다.
    중학교 때,처음 교회에 나가 성경을 읽다가 성경이 삶의 이야기로 구성된 스토리가 있다는것을 알게 해준 부분이 요셉이야기였죠.

    장면 장면과 상황들이 생생하게 펼쳐지고 그려져 10대,20대,30대,40대 읽어도 새롭게 읽혀집니다.

    이야기식 설교,스토리텔링 읽기 자료에 도움이 되네요.요셉의 스토리를 쓰고 싶었는데 덕분에 감상 잘했습니다.

    화려한 장식없이 꾸미지 않고 차분하고 깔끔하게 전개해 나가는 글솜씨가 탁월하십니다. 시나리오 작가로 등단해도 좋으실 듯 해요. ㅎ

    Reply
    1. 김형태 Post author

      꿈의 사람 요셉을…
      자꾸 비전의 사람으로 가는 것 때문에 조금은 불편한 적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한번 그쪽에 포커싱을 해 본 것입니다. ㅋ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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