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현존하는 미래 (2003년 1월에 쓴 글)

By | 2012년 12월 22일

2003년 1월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살던 때에 적었던 글을 가져왔습니다.

 

사랑하는 바울의 청년들이여,

그대들은 현존하는 미래입니다.
여러분만 젊은이가 아니고 역사이래로 청년은 계속 있어 왔습니다.
왜 기성세대가 여러분에게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여러분이 우리의 현존하는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현존하는 미래….인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미래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승만정권 때도…박정희의 군사정권 때도….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 때에도…….
나라를 망하게 한 김영삼 정권 때에도 젊은이들은 존재했습니다.
그때 그때마다 존재하였던…
당시의 상황에서 현존하였던 미래인 청년들이
이 나라의 기성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성세대의 입에서….나오는 말은… 청년들에게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왜 청년들에게 소망을 거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기성세대는 실패했습니다.
배고픔에 공부하며 발전시킨 사회가 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이 문제의 답은
바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였던 청년시절”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미래를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미래보다는
현재의 삶을 더 준비하고 있다고 저는 보여집니다.
미래의 삶에 대한 준비로서의 현재의 삶이 아닌,
바로 현재의 삶을 위한 열심히 여러분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최근(2003년 초)에 일고 있는 교회개혁에 대한 것도….
이제 여러분의 몫입니다.
교회개혁은 수일내에 몇달내에 몇년내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개혁은 우리 평생의 숙제이며
현존하는 미래인 여러분의 숙제일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여러분은 무엇을 준비하시겠습니까?
고시를 준비하며 면허증이나 자격증을 따며 준비하시겠습니까?
좋은 직장,,,,높은 지위를 얻어서..
개혁의 선봉에 서겠다고 하는 것이…준비이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했고…저의 선배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실패한 기성세대에 속하는 저는
여러분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 말씀안에 거하십시요. 많이 듣던 말이라 별로 신선하지 않지요?

시편 122편 6절에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안에서 예배하며, 기도하며, 찬송하는 모든 일이 축복의 통로인 셈입니다.

 

2. 책과 씨름하십시요.

책을 읽지 않는 자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책은 학교시절에 보고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읽어야할 것이 바로 책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1년에 책을 몇 권정도 읽으십니까?
책을 읽지 않고는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눈으로 보는 귀로 듣는…것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책은 참으로 많은 것을 가져다 줍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귀동냥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책과 더불어 여러분은 언론매체도 무시하시 않기를 바랍니다.
언론매체는 현세의 세상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속에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세상의 것을 뛰어넘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의 것을 뛰어넘을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온전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책은 여러분이 생각하지도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교회밖의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3. 역사와 씨름하십시요. 특히 여러분은 한국교회의 역사에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최근 들어서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국에는 5만여 교회, 10만여 목회자, 그리고 1천 200만 성도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부터 존경을 받기는 커녕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여러분은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중세시대에는 그 누구도 교황청의 권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읍니다.
그 당시의 신도들은 교황으로부터의 각종 의견과 명령에 대해 의심할 수 없었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수동적 개체’의 역할을 강요받아 왔습니다.
심지어는 성경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기 대문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 벽을 깨뜨린 후,
개신교의 신도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의 능력에 따라 스스로 결단하는
‘능동적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이런 모습이 없는지 우리는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무조건 비판할려고 하지 마십시요.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단지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은 이것을 제대로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4. 친구를 만들어가십시요. 친구는 동역자입니다. 기성세대가 되어서 함께 할 동역자들을 만나십시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아니 어쩌면 동역하는 훈련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서는 잘하는데 여럿이 뭉치면 왜 일이 망쳐지는지 생각해 보셨는지요?
선교도..헌신도…봉사도….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은 동역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함께 훈련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사람이 만능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다고 해도 결국 깊이가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대로 우린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그것이 큰 힘이 되기 위해서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솔직히 우린 그런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동역자의 단어를 협조자정도로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역의 집중력을 위해서 동역자, 즉 친구가 필요합니다.

 

5. 공부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요.

바울이 그러했고… 마틴루터가 그러했습니다.
금세기의 최고의 종교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목사님도 그러했습니다.
공부를 세상의 권세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세상의 공부를 하는 이유를 분명히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여러분에게 주어진 젊은 날에 이 공부를 게을리 한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는데
한계에 부딛히게 될 것입니다.
학문적 접근없이 교회를 개혁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공부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공부한 지위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쌓은 공부는 여러분이 쓰임 받는데 준비과정이 될 것입니다.
바울의 역사를 통해서 여러분은 보셨을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어늘날 갑자기 기도중에 머릿속에 떠올랐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는 꾸준히 박사과정까지 공부하고 다시 말씀을 깨닫고
또 그것을 통해 많은 수도승들과 토론하며
옮바른 말씀을 찾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물로 종교개혁이 나온 것입니다.

2003.1.25. 캐나다 노바스코샤 핼리팩스에서

2 thoughts on “청년, 현존하는 미래 (2003년 1월에 쓴 글)

  1. 서상용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된다면 장로님과 진지한 대화도 기대가 됩니다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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