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그리고 부흥회

By | 2019년 4월 8일

어제부터 춘계부흥성회가 시작되었다. 나는 부흥성회(일명 부흥회)는 잘 참석하지 않는다. ‘부흥회”라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뭔가 시끄럽고 요란스럽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경회’라는 이름으로 성경말씀에 집중하는 집회가 간혹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부흥회라고 하면 감정적으로 뜨겁게 만드는 그런 집회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과거의 나쁜 경험들이 지금도 부흥성회를 기피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학적 바탕이 약한 부흥강사들이 이끄는 부흥집회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왠지 무당이 굿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은 ‘이번 부흥집회에서 은혜를 받겠다’는 마음으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집회에 참석을 한다.

어제밤에는 온라인으로 부흥성회를 보았다. 온라인의 특성상 현장의 느낌보다 더 객관적으로 집회실황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부흥성회에 대하여 무슨 감시나 평가나 모니터링을 하기 위하여 온라인상에서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온라인상에서 부흥성회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채워진다.

어젯밤 집회에서 보여준 것은 부흥강사 자신이 경험한 기도에 대한 것이 주류였다. “이렇게 이렇게 기도하니, 이렇게 이렇게 되었다.”라는 것이었고, 따라서 “청소년들을 데려오라.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후에, 학생들을 앞으로 나오게 한 후에 안수기도를 해주는 것이 집회의 전부였다.

‘과연 저 청소년들에게 우리 기성세대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이 주제가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축복기도를 그것도 안수기도를 해주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1시간 넘게 집회를 참석하는 청소년들을 어른들은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라는 숙제가 계속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청소년들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이런 기회에 기도를 해주는 일도 매우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달고 오묘한 말씀“을 그들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어야 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본다.

거기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에 대하여 알려주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성경말씀에 대하여 잘 알려주면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그런 부분에 대하여 청소년들을 교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 집회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에게 기성세대들의 기복신앙을 그래도 전수하려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이다. “기도하니깐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라는 식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강사 자신이 “기도를 통해 성적을 19등이나 올렸다.”라고 발언한 내용은 자칫 성도들과 청소년들에게 잘못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학업성취』라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준비해야 할 청소년들에게 ‘기도만능주의’와 같은 기복적 신앙을 가르치는 일은 옳지 않다. 어찌보면, 한 청소년의 삶의 자세와 태도를 바꾸어버리는 죄는 짓게 된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질서의 하나님, 균형의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려주어야 한다.

나는 교회의 청소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도 기성세대들이 그렇듯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그들도 똑깥이 학업성취를 위해 힘써야 한다. 기도를 통해 삶의 목적이 뚜렷해지고, 삶의 태도가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복된 일이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성적을 올리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것이 기복신앙이다. 자신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잡히면, 당연히 노력이라는 과정을 통해 성적은 올라간다.

앞으로 3일간 더 열리게 될 부흥성회가 좀 더 성경적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제대로 말씀 안으로 되돌아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부흥성회가 말씀잔치가 아니던가?

[추가합니다.]
첫시간을 듣고 나서 쓴 글이라 솔직히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괜한 문제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월요일에도 들어보았습니다. 크게 변화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뭐 좋기만 하던데 뭘 그래요?”라고 말이죠. 아니면, “중간 중간에 좋은 말 많이 해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설교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경험 속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만, 어느 순간 자신의 경험을 회중들에게 강요하고 있고 그것이 믿음인 것 처럼 설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제가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거면 족하지 않을까요?

[공개전환] 2019년 7월 1일에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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