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해부실습실에서 떠오르는 기억 하나,

By | 2019년 6월 12일

20여년 전 젊은 교수 시절에 참으로 강의도 많았고, 실습도 많았다. 해부실습만 일주일에 세번씩(수, 금, 토) 있었다. 학생들도 고생했지만, 교수인 나도 고생을 했다. 교수도 몇명 없었던 시절이라 더욱 그리했다. 7시에 출근해서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것이 몇번이나 되었을까?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할 것이다.

오늘 해부실습실을 들어서면서 멍때리고 있는 학생들을 보니, 그 당시에 있었던 한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한 학생이 내 연구실에 찾아왔다. 그리고 이런 부탁을 한다.

“교수님, 제가 OOO 부위를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사실 그 부위는 학생들에게 관심도 별로 없는 부위이고, 또 실습자체가 쉽지 않은 부위였다. 그렇지만 그 학생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다른 학생들에게 특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했다. 사실 그냥 “네가 OOO 부위 해부해!”라고 하면 되는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실습 중에 그 실습조 테이블로 갔다. 그런데 마침 그 학생이 옆 학생과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버럭 화를 냈다. 순간, 실습실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실습시간에 그렇게 이야기나 하고 있고, 실습은 하지 않고 뭐하는거야! 네가 오늘부터 OOO 부위를 모두 해부하도록 해! 그리고 중간중간에 다른 조원들에게도 설명을 해주고, 끝까지 마무리하도록 해!”

그 실습조 학생들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모두 긴장해 있었다. 교수가 저렇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니 말이다. 그 학생도 “네, 교수님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열심히 실습을 했다. 중간중간에 다른 조원들에게 열심히 설명도 했다.

한 학기가 마무리되고, 모든 해부실습도 끝나고나서(기말고사 후 몇일간 실습을 추가로 한다) 추도식을 마친 후, 그 학생은 내 앞을 지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도 살짝 웃음띈 얼굴로 그 학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 학생과 비슷한 학생이 또 한명 더 있었다.

2 thoughts on “오늘 해부실습실에서 떠오르는 기억 하나,

  1. 김은영

    제자를 살려주시는 재치
    그 학생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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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태 Post author

      제 머릿속에 그렇게 기억되는 학생들이 꽤나 있습니다.
      좋은 기억입니다.
      그들이 좋은 의사로서 살아가고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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