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렀어!

By | 2019년 6월 20일

요즈음 한국의 대형교회를 보면 이 말이 튀어나온다.

“글렀어!”

이 말의 원형 동사 “그르다”의 사전적 뜻은 이렇다(출처 : 네이버 사전).
1.(흔히 과거 시제에 쓰여) 어떤 일이나 형편이 잘못되다.(예, 이번 일도 이미 글렀으니 다음 기회를 보도록 합시다.)
2.어떤 상태나 조건이 좋지 아니하게 되다.(예), 오늘은 날씨가 글러 먹어서 야구장에 가지 못하겠습니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교회가 뭐가 잘못되었다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냐?”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교회를 부정적으로나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노력 가운데 보여진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말이다. 왜 사람들은 비판적인(결코 비난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현상을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현재 한국의 대형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부정적인 시각이라는 프레임안에 감춤으로서 지금의 문제점(교회에서는 문제점이 아닌 죄악이다)을 애써 부정하려는 것일까? 문제점이 노출되는 것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고름주머니를 숨긴다고 병이 치료되지 않는다. 고름주머니는 칼로 잘라서 고름을 짜내고 다시 꿰매여야만 치료가 될 수 있다. 한국교회가 고름주머니를 차고 있다.

오늘 아침 교회 페이스북에 “대학청년공동체의 여름수련회” 포스터 사진을 올리면서 이렇게 적었다.

대학청년공동체를 응원합니다. 요즈음 한국의 수많은 교회에서 잘못된 신학으로 길들여져서 참진리가 무엇인지 혼동되는 시대에, 다시금 말씀으로 되돌아가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솔직한 제 심정은 “우리세대 어른들(나를 포함하여)은 글렀어. 여러분이 희망입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 글에 “글렀어”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기성세대들은 늦은 감이 있다. 그들은 그동안 잘못 길들여진 측면이 강하다. 교회나 목회에 대한 잘못된 학습에 길들여져 있다. 그들은 아직도 “안식일”과 “주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율법”과 “계명”을 구분하지 못한다. 구약시대의 “제사”와 신약시대의 “예배”를 구분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신학을 공부했다는 목회자들이 그것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한 신학을 가져와서 그것이 마치 기독교의 진리인양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왜곡되거나 거짓 진리가 그 세대들에게 먹혀들어가기도 한다. 왜냐면, 자신들의 듣고 싶은 소리를 해대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의 쓴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그것을 회피하거나 부정한다.

그런 세대들을 향해서 “글렀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는 성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성경을 보지 않는다. 성경에서 그저 필요한 말을 가져와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고 왜곡하고 있다. 말씀의 모양은 있으나, 그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세적 복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복은 멀리하고 있다. 왜냐하면,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나를 포함하는 세대들을 향해 “글렀어!”라고 말할 때, 우리 함께 다시 말씀으로 되돌아가기를 소망한다. 그래야만 한국의 교회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소멸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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