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하라!”

By | 2019년 8월 7일

요즈음 내 자신에게 외치는 소리이다.

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지금도 자유스러운데 얼마나 더 자유스러울려고 그러냐?”라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맞다. 나는 지금까지 자유롭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자기 멋대로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짜여진 삶의 틀 안에서 내 스스로 얽매이지 않고 살아왔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김형태 교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물론 그 말에 내 스스로 위축되는 부분이 있다. 그만큼 자유스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고 보면 우리사회가 얼마가 경직된 삶을 사는지 알 수 있다.

요즈음 교회 내에서 나는 ‘빨갱이’이다.

당회에서 계속 발언하고 질문한다. 작년 12월엔 설교표절과 관련하여 담임목사와 만남도 가졌다. 당시에 8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그 항목 중 여덟번째가 ‘설교표절’이었다. 설교표절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 범죄행위이다. 그 외에 7가지의 문제에 대하여 나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 중 한가지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한다. 내 앞에든지, 내 뒤에서든지. 그 말들이 내 귀까지 전달된다.

  • 당신은 죄를 짓지 않느냐?
  • 담임목사가 뭘 그리 잘못한 것이 많냐?
  • 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 원로목사 때도 그랬다. 다 관행이다.
  • 그 설교에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다.
  • 다른 장로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당신이…
  • 다른 교회도 다 그런다.
  • 규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
  • 차츰 좋아질 것이다.
  • 헛똑똑이다.
  •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지 마라.
  •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말라.
  • 다른 권사들이 당신 욕을 한다.
  • 담임목사면 맘대로 해도 된다.
  • 담임목사의 리더십을 인정해라
  • 등….

담임목사는 강단에서 수많은 저주를 퍼부었다.

담임목사가 설교를 하고 나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김장로 들으라고 하는 소리구먼”, “안장로들으라고 하는 설교여!”, “안장로, 독사 조심혀, 물린당께”, 등…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다. 그의 강단에서의 언어적 폭력은 이미 그 수위를 넘어섰다.

새로운 정관이 만들어졌다.

담임목사는 정관 내용을 알자마자 몇몇 장로님들을 찾았다. 처음엔 협박성 발언을 하더니만, 어제는 자세를 낮추고 엎드리는 비겁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정관의 내용은 어느 교회에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자신이 잘 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 성도들은 착하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런 성도들은 왠만하면 다 넘어간다. 그런데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바로 ‘장로’들이다.

정말 선후배 장로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의 바울교회의 문제의 중심에는 장로들이 있다. 장로들이 교회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도대체 왜 장로의 직함을 달고 있는지 의문이다. 당회에서도 침묵, 교회 내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들은 그런 모습을 ‘순종’이라고, ‘믿음’이라고 배워온 것일까? 담임목사의 불의를 보고도 방관한다. 당회에서 의결했던 “정책당회”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그런 장로들이다. 막내 장로가 발언을 하려고 하는 것을 끌어내리는 장로들이다.

누구 하나 교회의 재정에 관심이 없다. 도대체 담임목사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어디에 돈을 쓰는지 장로들이 모르면 누가 알 것인가? 관행대로, 자기마음대로 돈을 쓰는데 이를 컨트롤할 제도가 없다. 최소한 당회에서 장로들이라도 관심을 갖고 질문도 하고, 문제도 제기해야 하는데 그저 방관이다. 이러니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장로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일부 장로들이 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이다. 다수가 침묵하고, 다수가 방관자로 있기 때문이다. 중립도 지키지 못한다. 한쪽으로 쏠린다. 문제는 그쪽이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 교회의 성도들이 장로들을 믿겠는가? 제왕적 목회를 꿈꾸는 싻꾼 목사 하나를 당회가 손을 못대고 있다. 오늘도 장로님 한분이 전화를 하셨는데, “그래서 안타까운거여~!”라는 말만 반복한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하셨는데, 해결책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일반성도들은 교회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교회를 다닌다. 설교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설교라며 이미 교회를 떠난 분들도 있고, 현재 견디고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상당수는 별 문제의식이 없다. 복음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감성적 설교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한국교회가 이런 모양새이다. 더구나 성결교단은 더욱 그렇다. 그나마 예장교단의 교회들이 설교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을까?

아내가 이야기한다. “이상한 한 사람 때문에 너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지 마세요”라고 말이다. 그 말이 맞다. 내가 지금의 상황에서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장기전(?)에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이것은 회피는 아니다. 그냥 자유로움이다. 따라서 내 스스로에게 “자유하라!”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싸움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성도들이 교회가 바로 서기를 원하고 있고, 무엇보다고 하나님께서 바울교회가 바로 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글 하나를 남겨둔다.

처음부터 비공개로 두었다가 2022년 2월 25일에 백업하던 중 공개로 전환한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