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교회가 ‘교회’되려면,

By | 2020년 8월 26일

교회(敎會)의 사전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고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아침에 어떤 권사님과 통화를 했다. 정확히 1년 전에 그 권사님께서 만나자고 하셔서 교회근처 커피숍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 때에는 바울교회가 매우 시끄러워지려고 할 때였다. 도저히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는 판단에 나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리고 담임목사의 맞트레이드가 이루어지고, 코로나 사태가 왔다. 교회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장로들 중 대부분은 교회를 떠나거나 장로직무 휴무를 내고 당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 권사님께서 “이제 제대로 된 장로가 몇 안남은 상황에서 왜 김장로도 휴무를 내서 교회를 떠났느냐?”라고 말씀하신다. 그 권사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20년 넘게 보아온 그 분의 성품을 너무 잘 안다. 그 분이 걱정하는 부분도 안다.

아침에 통화를 했는데, 하루 종일 동영상 강의에 집중하다가 이제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아침에 통화했던 내용들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이렇게 몇자 적어두는 것이다. 제목에 “바울교회가 교회되려면.”이라고 썼다. 그렇다면 바울교회는 교회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바울교회는 교회인데, 교회가 아니다.”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하여 내가 꼭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미 정답이 나와 있기 떄문이다. 그렇다면 바울교회의 성도들은 믿음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도 믿음이 있다. 단지 오랜 시간동안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생활을 한 탓에 이미 잘못된 타성을 스스로 발견하지도 못하고, 알았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구하는 신을 교회 안에 가두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신이 필요한 셈이다. 신앙이 아닌 종교이다. 샤마니즘이다. 목사는 스스로 하나님의 대변자라는 화려한 이름을 붙여놓고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치고 자신의 말에 순종하고 복종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거기에 필수적으로 헌금을 통한 재정적 착취가 뒤따른다. 비단 바울교회 뿐이랴. 한국의 대형교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성경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바꾸었다. 필요하면 구약성경에서 가져오고, 필요하면 신약성경에서 가져온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 보인다. 그저 자신들의 탐욕과 권력을 위해 이용할 뿐이다. 나의 이런 말에 언제든지 반박을 해오면 좋겠다. 그러나 몇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로, 재정을 공개하기를 바란다. 나는 지난 2년간 장로인 내 자신이 회계장부를 들여다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철저하게 경험을 했다. 장로나 교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에 공개를 해야 한다. 공개를 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가치와 상식에서 벗어나는 잘못된 일이다. 지금 재정을 공개하는 교회는 그렇다면 무엇인가? 공개를 하지 않는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재정공개를 준비하면 재정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것이 재정공개의 선물이 될 것이다. 지금의 재정지출은 많은 부분에서 재검토되어 수정되어야 한다. 지금 상황으로는 절대로 공개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십일조를 폐지해야 한다. 십일조가 성경적이라고 아직도 말할 수 있는가? 성도들에게 잘못된 헌금과 십일조에 대하여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교단법이 그렇다고 변명하지 않기를 바란다. 교단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교단법이 잘못되었다면 그 법을 고쳐야 한다. 교단이 성경이 정한 단체이던가? 이미 이익단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세째로,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목회자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한다. 지금 성결교단의 많은 목회자들은 대체적으로 신학적 배경이 약하다. 이제 달콤한 말씀으로 교회인들을 사탕발림하면 안된다.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어야 하고, 그 뜻에 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목회자의 몫인데, 지금의 모습은 그것이 아니다.

네째로, 이제는 교회를 흩어야 한다. 아직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대형교회를 추구하면서 계속 사람들을 바울교회로 모이게 했다. 이제는 그들을 각 지역을 섬길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그리고 준비가 되면 그들을 흩어서 각 지역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이제는 교회버스를 돌리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 삶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면 바울교회 예배당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은 한낱 쇼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성도들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신앙이라면 그것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선교사역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선교하는 교회를 표방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우습게도 선교비를 매우 적게 사용된다. 선교를 빙자하여 돈을 모으는데 선교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뿐이다. 이제는 진짜 선교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저 돈 몇 푼 던져주는 식의 선교는 중단되어야 한다. 현재 파송되어 있는 선교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선교사역에 구체적인 방향성과 목적성을 재점검 후에 지속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선교비 명목으로 나가는 십수억원의 재정지출도 멈추어야 한다.

여섯째, 제왕적 목회를 중단해야 한다. 목회자를 신격화하고, 목회자에 의해 교회의 좌지우지 되어왔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당회의 목소리가 커졌다고 하지만, 내가 봐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당회는 비판적 사고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거치고 있는 단계에 불과하다. 이유는 목회자가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의 한사람”으로서가 아닌 “담임목사”라는 틀에 아직도 갇혀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성경적 관점도 없는 상태이다. 목회자 자신도 문제이지만, 장로들을 포함한 성도들도 문제이다. 너무 오랜시간동안 학습된 탓에 바뀌기 힘들 것이다. 성도가 힘들다면 목회자 스스로 이것을 바꾸어 가야 한다. 그것이 힘들더라도 해야만 진짜 목회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바울교회의 모습은 그게 아니다.

일곱째, 장로직은 임기제로 해야 한다. 7년 임기제로 해서 장로의 직무 기한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정년의 나이도 65세로 줄여야 한다. 장로는 간판이 아니다. 일꾼에게 부여하는 십자가이다. 지금은 목회자가 스스로 권력을 누리듯이 장로들로 교회안에서 계급을 만들고 그것을 권력화하고 있기 때문에 장로직의 임기제가 필요하다.

밤이 늦었다. 아침에 통화를 하고, 하루종일 다른 일에 시달리다가 정리를 하려니 피곤이 엄습해 온다. 일단 이렇게 적어놓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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