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역자를 통해 본 교회

By | 2020년 11월 28일

아침시간인 지금, 최덕신목사의 2001년에 발매된 “By Your Blood” 음반을 듣고 있다. 이 음반을 들으며 교회에서의 음악사역에 대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나는 한때는 교회에서의 음악사역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적이 있었다. 교회 안에서의 음악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8,90년대가 교회에서의 음악사역은 전성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목회자, 아니 목사 중심의 한국교회의 특성상 수많은 찬양사역자들은 그저 예배분위기를 돕는 도우미 정도로 취급되었다. 오늘날에도 별반 다르지 않는 분위기라고 보여진다. 예배의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찬양사역자들을 그저 딴따라 수준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찬양사역자 자신들도 모두 목사가 되는 길을 걸어야했다. 목사라는 타이틀을 달아야 통하는 교회의 문화특성에 그대로 순응해 가는 것이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불필요한 목사 타이틀이 필요해진 한국교회의 문화”에 대한 것이었다.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교회가 아닌, 목사 타이틀을 가져야만 하는 교회의 문화에 대해서 말이다.

“최덕신 집사가 왜 최덕신 목사가 되어야 하지?”

그는 음악인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가 만들어낸 음반들은 많은 기독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다. (그에 대한 여러가지 뒷이야기로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이야기하는 주제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설교와 교회관리를 하는 ‘목회’를 하는 목사나,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목회’를 하는 찬양사역자의 위치가 어찌 위아래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한국교회의 목사들과 목사를 신격화하는 일부 교인들이다. 그런 분위기는 교회에서의 풍성한 음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들을 스스로 박탈하고 말았다. 찬양사역자들은 가난한 음악인으로 전락했고, 그들의 재능을 썩히고 말았다.

이런 분위기나 문화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크리스천이라면 한번 더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할 말은 많지만 짧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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