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목사가 된 이웃집 아저씨

By | 2020년 11월 29일

일반적으로 목회자들은 처음부터 신학대학을 진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 어려서부터 꿈이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명감으로 목회자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이가 들어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신학대학을 가서 목회자의 길을 걷는 경우도 있다.

그 어느 경우나 귀한 일이다. 목회자의 길을 걷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신학적 배경이 없이 어느날 갑자기 목사가 되어서 나타나는 경우이다. 신앙생활 도중에 소위 “은혜”를 체험한다. 극히 개인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이를 규정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이다. 이 경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거듭남의 체험을 하게 된다. 많은 성도들이 “간증”이라는 것을 통해 말할 때 언급되는 바로 그 체험이다.

그런데 그런 체험 이후에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는 경우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복된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목회자의 길을 걸을려면 정상적인 신학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름도 모를 이상한 신학대학(대학인지도 모를)에서 목사가 되어서 나타나는 경우이다.

자신이 스스로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고 생각했다면 매우 정상적인(아니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신학대학 과정을 거쳐서 목회자의 길을 가야 하는데, 신학대학을 다닌다는 말을 한지 불과 1,2년 사이에 목사가 되어서 나타나는 것이다. 정상적인 신학대학에 단기코스가 있을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어느날 목사가 되고, 건물을 얻어 교회간판을 붙이고, 소위 교회를 개척한다. 그런 과정을 이웃들이 지켜본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뭐징?’

이런 반응이 아닐까? 어제까지 장사를 하던 이웃집 아저씨가 갑자기 목사가 되고, 근처에 교회를 개척했다고 하면, 과연 그 모습을 통해 일반사람들은 교회나 목회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사람이 죽을 질병에 걸렸다가 수술을 통해 극적으로 살아난 뒤, 의사의 길을 가겠다고 하면 누가 말리겠는가? 의대에 들어가서 의학을 배우고 의사면허를 취득하고나서 의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수술에 심취하여 대충 동남아에 가서 가짜 의사면허증을 가지고 국내에 와서 의사로서 살아간다면, 과연 그 사람이 의사이겠는가? 그게 극적으로 살아난 사람이 할 짓인가? 말이다.

은혜를 받았거나, 신앙적 체험을 했다면,

자신이 일하고 있던 자리에서 목회자적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 신앙적 체험이 너무 커서 목회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과연 목사의 길을 가는 것이 꼭 “목회”의 전부일까?

“목회”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본다면, 답은 쉽게 나오지 않을까? 목사가 되어야 목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한국교회에서 목회자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사회적 영향이 목회자의 길을 가도록 만드는 요소는 있지 않았을까? 한번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살아간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귀한 “목회”의 삶이 아닐까? 그런 목회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삶이 되는 것이기에, 그렇게 살아간다면 이미 자신은 목회자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목사가 너무 많다. 차고 넘친다. 다들 교회간판을 걸고 목회를 하고 있다. 말 그대로 풀타임 목사들이 너무 많다. 파트타임으로 목회를 할 수는 없을까? 간판을 걸고 헌금을 내줄 성도를 기다리는 목회보다는 오히려 다른 직업을 갖고 목회자의 삶을 살면 어떨까?

가난한 동네일수록 교회간판은 더 많다. 마치 예전에 가난한 동네에 가면 깃발(?)을 내건 집들이 많았던 것과 겹치는 것은 과연 나의 왜곡된 시각일까? 주일 아침에 연구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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