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중심?

By | 2021년 1월 17일

어제 집에서 시내로 가는 도중에 어떤 가게 앞마당에 ‘한라봉’을 펼쳐놓고 파는 분을 보았다. 보통은 바구니에 몇개씩 담아서 일정액을 받는 것이 보통인데, 이 분은 아예 한라봉을 펼쳐 놓았다. 그래서 “왜 그럴까?”라는 말을 던졌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그러는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이런 예상들을 해보았다. 아내와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첫째로, 운전자들이 지나칠까 봐서 가게 앞마당에 넓게 펼쳐놓고 판다. 그래야만 눈에 금새 띄게 될테니까.

둘째로, 바구니에 쌓아놓으면 소비자가 혹시나 상한 한라봉이 있을 것을 의심하기 때문에 저렇게 펼쳐놓고, 소비자로 하여금 확인한 후에 사가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세째로, 아무런 목적이 없이 그냥 저렇게 파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지나치면서 두번째 이야기에서 좀 더 길게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가 사과나 귤, 한라봉 같은 과일을 박스로 사면 흔히 한두개쯤은 상해있을 수 있다. 과일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소비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실 장사하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속이려고 하지 않더라도 과일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소비자와 공급자가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은 워낙 소비자 중심이다 보니 이런 것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공의일까?’라고. 의도적으로 속이고 파는 과일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용납하고 사는 세상이 아름다운 것 아닐까? 첫번째나 세번째 이유일 수도 있는 일을 아내와 나는 오지랖을 부리면서 ‘공의’까지 말을 만들어갔다.

그저 싸고 좋은 물건만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는 세상이 결코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소비자와 공급자가 함께 행복해야 한다. 누구나 소비자가 될 수 있고, 공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한라봉을 파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들이 많아진 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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