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위기”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본다.
위기(危機)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한 고비나 시기“이다.
최근에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한 어느 책에서 그 이유를 “저출산, 고령화, 평균수명 연장”에서 찾고 있다.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저출산, 고령화, 평균수명 연장에 의해 기독교의 위기가 발생되는가? 다시 질문하자면 왜 이런 요소들이 교회에 위기를 가져오는가?하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이런 질문을 해본다.
“무엇이 한국교회의 위기인가?”
흔히들 대형화된 한국교회의 양적 축소를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근 50여년간 양적 성장만을 추구해 왔던 교회가 그 양적 성장을 멈추고 축소될 상황을 위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데,
내가 보는 한국교회의 위기는 “교회(성도)의 믿음없음.”이다. 교인 수가 줄고, 헌금이 줄고, 양적 성장을 멈추는 것이 위기가 아니라, 오늘날 믿음없이 종교생활을 하는 교회자체가 위기라고 보여진다. 양적 성장이 마치 본질인냥, 교회의 본질을 왜곡해 왔던 교회 스스로 갖는 자괴감에 이은 위기감일 뿐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소위 교회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그 위기에 대처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자신들이 살아있는 한 동안(소위 천국에 가기 전까지)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교회가 망하기 전에 다 누릴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일부는 여태까지 열심히 해 왔으니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직도 한국교회는 교회건물을 짓고 치장하는데 힘쓰고 있고, 의미없는 기념관들을 지으면서 성도들의 헌금을 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들을 미화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무슨 기념관이니, 무슨 선교관이니 하면서 계속 성도들의 헌금을 써대고 있다. 또한, 그런 돈많은 교회들과 목사들을 부추겨 이리저리 돈을 빼먹는 기독관련 기관들이 얼마나 많은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렵게 살았던 세대들은 쉽게(아니 절박하게) 하나님께 매달렸다. 경제발전과 함께 인구도 급상승하며, 교회는 쉽게 양적 성장을 이루어 왔다. 세상의 법칙으로 말이다. 그러나 다음세대들은 어떤가?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환경에서 오직 사회적 성공과 부를 꿈꾸는 세대들이다. 그들에게 그동안 교회에서 사용했던 전도방식으로는 교회성장을 이룰 수 없다. 인구가 줄면 당연히 기독인구는 줄어든다.
기성세대 기독인들은 한번 자신들을 돌아다 보아야 한다. 자신의 자식세대들이 자신들의 젊었을 때의 모습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말이다. 또한 자녀세대들이 기성세대인 부모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돌아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자신들의 자녀들이 “내 부모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내 스스로도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온라인으로 세상이 연결된 새로운 시대에는 믿음이 있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질적 삶을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종교적 행위를 통해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수많은 예배와 헌금과 헌신으로 구원을 사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그렇게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아무리 경제적 풍요함을 누리는 세대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인간으로서 갖는 고독함과 빈곤함을 채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로하고 도울 준비를 하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낸다면 지금 걱정하고 있는 양적 성장의 멈춤이나 축소에 대하여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