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이웃사랑(7)-완결편

By | 2022년 1월 16일

크리스천의 이웃사랑은 기독교의 계명이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닌 크리스천이면 지켜야 할 계명이다. 그런데 앞서 여섯편의 이웃사랑에서 몇가지 경우를 예를 들어서 언급했다. 간단하면서 잘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웃사랑의 실천이 아닐까? 사실 많은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이웃사랑”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크리스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인간의 모습이다. 신앙을 가졌던지, 그렇지 않던간에 인간의 연약한 모습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기억한다. 회심 이후의 그의 삶은 완전히 변하였다. 그리고 그 삶에서 나온 것이 바로 그의 신약성경들이다. 그런 바울이 로마서 7장 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러한 고백 이전인 로마서 7장 21~2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치제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선하게 행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거나 불쌍한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이유로 그들을 돕는데 주저하게 되고 결국 외면하게 됩니다. 바울은 그것을 “악”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는 악이 존재합니다.

그 악은 여러가지 핑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 핑계는 결국 처음 먹었던 선한 마음을 앗아가 버립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져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어지는 로마서 8장에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바울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고 답을 말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에(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비겁한 속성)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의 이웃사랑은 이러한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깨닫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해야 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된 속성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신앙생활이고,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따라서 우리 연약한 인간은 기도의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반복하는 이야기이지만, 추락한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되는 길은 “이웃사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웃사랑 실천”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웃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한국교회가 교회주의나 종교주의에서 빠져나와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교회는 이 땅을 밝히는 빛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이 가진 직업으로 인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하고, “청렴”해야 하고, 자신의 위치가 “권력”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나아가 대하는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돈” 때문에 “인간의 소중함”을 잃어버리는 잃은 더욱 안될 것입니다. 이웃사랑은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웃사랑은 계명의 실천이자,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주일 오후에 적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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