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By | 2022년 5월 1일

요 며칠 사이에 오래전에 돌아가신 고모 한 분이 생각난다. 다른 고모들은 현재 모두 살아계신다. 그 고모의 죽음은 “자살”이었다. 남편(고모부)의 가정폭력의 결과가 고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태어나면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던 고모는 논 몇 마지기와 함께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비록 장애가 있었지만, 머리가 매우 좋았고 항상 밝고 긍정적이었다. 두 아들과 딸 세명을 낳고(내 기억에는 아들 둘과 딸 한명만 생각남) 그런대로 잘 살고 있었지만, 고모부의 폭력은 반복되었고 어느날 고모는 자살을 선택했다. 아마도 학교다니던 시절이라 장례식에 가질 못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자살’이라는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 탓도 있다. 그 뒤에 할아버지 장례식 때 고모부가 나타나서 술취한 채 젊을 나를 붙잡고 연신 “미안하다”를 반복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수년 전에 사촌동생들과 연락이 한번 닿았는데, 그 뒤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자살하면 천국에 못간다?

교회에서 흔히 그렇게 말한다. 단순히 “자살은 나쁜 것이니 하지 마라. 힘들어도 살아라.”라는 격려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닌 듯하다. 진짜 그렇게 규정해 버린다. 따라서 자살한 사람의 장례예배를 잘 하지 않으려는 성향까지 보인다.

그런데 자살하면 천국에 가는지 안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국이나 지옥에 갔던 사람이 다시 와서 말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살을 미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자살을 방조하려는 것도 아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에게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굴레를 씌우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살이라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자살은 극히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그들이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울증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부터, 자살로 갈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어려움에 빠뜨린 상황을 만들어내는 개인적, 집단적, 사회적 폭력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한쪽의 팔다리의 장애와 비뚤어진 얼굴로 해맑게 웃던 고모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세 자녀를 놔두고 이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고모의 상황은 아마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을까?

누가 그녀의 죽음에 뭐랃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가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방조했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죽음은 거룩하고, 자살자의 죽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사회가 자살을 예방하려고 사회적 노력을 하고 있다. 각 개인도 주변을 둘러보고, 누군가를 자살로 내모는 가해자의 위치에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보며 세상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제발 좀 “자살하면 지옥간다.”라는 이야기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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