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교수

By | 2013년 3월 30일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조교수는 자신이 아는 것 이상의 것을 가르치고, 부교수는 자신이 아는 것만 가르치고, 교수는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친다”라고. 거기에 한가지 덧붙여진다. “전임강사는 아무도 모르는 것을 가르친다”라고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교수의 사전적 정의는 예전보다 광범위해졌지만, 교수의 고유의 일 중 하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teaching)”이다.

교수는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의 고유의 연구분야를 통해 전문성있는 지식을 가르치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지식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런 가르침은 꼭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습실과 실험실에서 실습과 실험을 통해 행하여진다. 요즈음 대학이 고유의 목적인 “교육”과 “언구”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전문성(세부학과가 정해진 궁극적인 이유)을 가진 사회인으로 사람을 길러내는데 교육의 목적이 있다.

가르치는 선생으로의 교수는 몇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첫째로, 학생은 내 소유물이 아니다. 자식이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것과 같다. 학생들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친근한 것과 분명히 다른 “존중함”이 있어야 한다. 교수가 학생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것은 아니다. 절대로 우위에 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인격적인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수라고 다 인격을 갖춘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인격적 결함은 있다. 그러기에 부단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이 교수에게 주어졌다는 의미이다.

둘째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선생”이기 때문이다. 먼저 세상에 나와서 먼저 배웠고, 먼저 지식을 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에서의 멘토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시직이야 교수가 더 뛰어나겠지만, 능력만으로 본다면 학생들 중 더 뛰어난 학생들이 있다. 다만 학생은 나중에 배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자신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지식의 수준에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보다 훨씬 더 훌륭한 제자들이 나와 이 사회에 기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째로, 수업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교수는 늘 자신의 수업을 피드백하고, 개선·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수업을 디자인하고, 그 수업의 전체적인 그림을 늘 마음속에 두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제대로 학습하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강단에서 쏟아내는 지식을 학생들이 모두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학생들의 능력의 차이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교수는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학생들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네째로, 학생들과 끊이없이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에는 대화가 늘 필요하다. 교육의 피드백을 위한 대화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더 나은 교육을 준비할 수 있다. 학생들이 성적을 확인하기 위하여 의무적으로 하는 “강의평가”보다는 학생들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더 좋은 교육의 결과들을 이루어내야 한다.

학생들은 단순히 교수의 강의내용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은 아니다. 교수의 삶을 통해 배운다. 특히 의대나 의전원은 더욱 그렇다.

나는 자주 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좋은 교수인가? 나는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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