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예과 교육과정 개발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

By | 2013년 8월 12일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의 체제가 끝나가고 의과대학의 체제로 되돌아가고 있다. 일부 정치공무원들의 파렴치한 결정으로(물론 의전원체제에 대한 평가는 후일에 정확하게 내려질 것이지만) 혼란을 겪었던 의학교육의 시스템이 5개의 대학(이 중 일부는 다시 의과대학 체제로 돌아가고 싶어한다)을 제외한 모든 대학이 의과대학체제가 된다.

기존에 의전원으로 약 10년간 학생을 교육해 온 대학들은 의예과의 부활과 함께 의예과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다시금 세우고 있는 중이다. 의과대학의 교수들 자신들이 경험했던 의예과 교육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쓸데없는 과정”으로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과연 의예과가 필요없는 과정이었을까? 아니면 운영을 잘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일까?

왜 의예과가 자연과학대학에 속하였었고, 자연과학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들을 이수해야만 했을까? 물론 의학교육의 트렌드는 변하고 있다. 이제는 의학교육의 학습목표가 1차 진료가 가능한 퍼포먼스를 취득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교육체제란 끊이없이 변한다. 의사의 역할이 변하듯이 교육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medicine)“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금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의학은 자연과학의 한 부류이다. 의학에 비하여 그 학문의 폭이 매우 넓은 자연과학을 의학을 배우기 전에 배우는 것이 바로 의예과 과정이었다.  지금 의과대학의 교수진을 이루고 있는 세대들에게 의예과는 단지 본과(의학과)를 올라가기 위한 과정들이었을 뿐이다. 학문적 가치도, 학문적 열정도 의예과에는 없었다.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그 누구도 그 부분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책임을 지지 않을 선배들의 입에서 나오는 전설(?)에 가까운 정보만이 그들의 삶을 지배했다고 극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선배들이 주는 정보라는 것이 “어느 교수를 조심해라”라던가, “학점을 잘 주는 과목은 무엇”이라던가, “학점을 따기 쉬운 과목은 무엇”이라던가, 등등 의학을 배우는 전단계로서의 의예과 과정은 그렇게 왜곡되어 있었다.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세대 교수들이 의예과 교육과정의 개발에 참여하다 보니 그 시각마져도 좁고 때론 왜곡되어 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의예과를 교양과목 중심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교양”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바로 “교양과목”의 정의가 제대로 서있지 못하다는 것이 나의 우려이다.

먼저 “교양과목”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이제 의예과가 의과대학속에 편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의학과 진학을 위한 과정으로서 의예과“에 대한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어느 의과대학이던지 명확한 학습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교육과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의예과도 분명한 학습목표와 교육과정을 개발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많은 대학들이 수고를 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의예과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교육과정은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결코 의예과에 맞는 학생들을 뽑지 못하는 입시제도를 갖고 있다. 그저 성적으로만 뽑다보니 인성분야는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이것을 인식하는 대학은 의예과 과정을 인성을 쌓는(또는 가꾸는) 과정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때로는 의학과에서 배워야 할 일부과목을 내려서 배우는 시간확보의 과정으로도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의학과 진학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의예과로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옛날에는 왜 자연과학대학에 의예과가 있었고(지금도 이 시스템을 고수하는 곳도 있다), 자연과학과목을 배워야했던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의 의학교육의 목표는 “기능인으로서의 의사”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든다. 총체적으로 자연과학을 이해야하고 그 안에 있는 의학을 배우고 익힌 의사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의사” “의학자” “의과학자“를 길러내는 과정으로서 의예과와 의학과 과정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Doctor이다. 의사는 그냥 박사가 된다. 인간을 이해하는 박사이어야 한다. 현대의 의사의 역할은 다양화를 거치면서 Doctor라는 의미지와 많이 멀어져가고 있다. 즉, 본질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니 의예과 과정은 불필요해 보일 수도 있다. 의전원을 주장했던 많은 사람들은 “의예과 교육의 부실”을 이유로 꼽았다. 그들은 의예과 교육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잘못 운영되어 온 의예과 과정을 볼모로 수많은 대학에 혼란을 야기했었다. 교육과정의 결정권이 있었던 그들(각 의과대학)마져도 의예과 교육의 정상화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버림”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의예과를 대신했던 일반 학부과정이 과연 의학을 배우기 위한 전단계로서의 학문의 과정이었는가?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의예과 교육목적의 본질을 잃었던 것 처럼 의전원을 위한 학부과정마져도 그 본질을 잃었거나 왜곡되었던 셈이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대학들이 다시 의예과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의예과 교육“이다. 그 본질을 생각하지 못하고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것은 또다시 잘못을 반복할 우려가 있다.

그 와중에 “교양”과목을 떠올린 것이다. 과연 대학에서 말하는 교양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사회에서 말하는 교양이 아니다. 에티켓이나 매너가 아니다. 평생교육원에서 가르치는 취미나 문화생활에 필요한 과목을 배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의예과에서 체육과목이 있다면, 나중에 그 과목을 배웠던 경험이 의사로서 스포츠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테니스를 배우는 과목을 의예과에 넣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또 예를 들어 우리가 의예과를 다니면서 배웠던 심리학은 후에 의학과에서 배운 정신과를 이해라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의예과에서 배워야 할 과목들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의과대학안으로 편입한 이유로 교육의 행정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쪽으로 기운다던가, 그런 교양(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양이 아닌)이나 쌓는 과정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2년의 과정안에 “학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을 공부의 구렁텅이라 빠뜨리자는 것이 아니다. 의예과생들이 의학을 배우기 전에 그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역량“을 극대화하는 과정이 의예과의 2년과정안에 있어야 하고 이것을 위해 의예과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교수들은 고민에 또 고민과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4년 1월 9일에 감춘글에서 공개로 전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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