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을 벗어난 자녀를 둔 부모를 만나다

By | 2011년 4월 11일

어제 지인을 만났습니다. 3년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딸아이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리고 식사가 끝나고 가까운 카페에 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마음이 저려왔습니다.

아빠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졌습니다. 엄마도 직장이 있습니다. 조금 늦게 아이를 가져서 큰 딸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공부를 하지 않아서 전주에 있는 학교를 가지 못하고 인근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단순히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닌 트랙을 벗어난 상태였습니다. 좋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담배는 기본으로 피우고. 전 그 아이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약 5년전 모습이긴 하지만 그저 활달하고 평범한 이쁜 딸아이였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데 전해 들은 이야기는 제게는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믿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 아이를 정상 트랙에서 벗어나게 했을까? 상당히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아니 그 원인을 찾는 것 보다는 해결책들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더 많았습니다. 학습은 불가능한 상태이고, 가출만 하지 않으며 감사할 그런 상황이니 부모의 마음이야 어떻겠습니까?

몇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처지는 아닙니다만. 안타가운 마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첫째로, 그 아이의 등하교 중에서 하교 때 픽업을 하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직장 때문에 주중에 2번 주말에 집에 옵니다. 따라서 엄마가 직장 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직접 픽업을 하라고 했습니다. 아빠 보다는 엄마와 조금이나마 대화의 통로가 이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아이를 픽업해 오면서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시도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냥 차안에서 서로의 호흡에서 나오는 공기를 공유(sharing)하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듣는다면 그것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도이기 때문에 답답하더라도 당분간 그렇게 내버러두라고 했습니다.

세째로,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차안에서 함께 듣도록 시도해 보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엄마는 그 음악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함께 듣는 노력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노력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노력의 모습이 딸아이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네째로, 만일 아이가 대학을 가고 싶어한다면 공부는 일단 원서만 내면 들아갈 수 있는 그런 대학을 염두에 두고 3년을 목표로(지금 1학년이니) 수능 시험지를 읽을 수 있는 수준정도에 이르도록 서서히 풀어가라고 했습니다. 정상적인 상태의 학생을 둔 부모라면 말이 안되는 상황이지만 지금의 경우는 현실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엄마와 소통이 되기 시작하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대학을 갈 의지가 있다면 가정교사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성적을 많이 올린다기 보다는 그저 간단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을 목표로 말입니다.

다섯째로, 그러면서 계속 아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지 파악하는 노력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미술에 관심이 있는지, 미용에 관심이 있는지, 애완동물에 관심이 있는지, 아니면 장사에 관심이 있는지 등 다양하게 파악하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관심이 있는 일을 고등학교를 마치고 할 수 있다면 하는 것도 생각해 보고, 혹시 대학을 조금이라도 갈 마음이 있다면 보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부모는 실제로 많이 지쳐있고, 부모의 도리로서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기 떄문입니다.

이 밖에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가지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은 “부모의 변화”입니다. 변화하지 않더라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 저의 의견이었습니다. 아빠는 골프를 줄이고, 엄마는 모임을 줄여야 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자식이 이런 상태인데 골프가 뭐고, 모임이 뭐냐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년만 부모가 참고 기다린다면 아이는 변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빌지 않으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겠습니까만, 많은 부모들이 자식과의 소통의 통로가 끊기는 순간 그런 기도와 바램은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어렇게 된 것을 꼭 부모의 잘못으로만 돌리고 싶지 않지만,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자식이기에 부모로서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생각은 있지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결단과 방법에 대한 노력을 해야할 것입니다.

여기에 적지 못하는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복잡합니다. 어젯밤 일이 제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어서 서울로 회의를 가는 버스안데서 노트북을 꺼내 적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이 제 주위에도 종종 있습니다. 몇가지 공통된 부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이런 경우를 보이는 경우, 부모들이 자녀를 잡으려(?)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부모의 소유가 아닌, 그저 잠시 맡겨둔 보호자 정도로 자신들을 생각하면 문제가 더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이미 놓쳤는데, 이전의 좋았던 기억만 계속 되새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런 회피가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전이겠지만 말입니다. 또한 희망보다는 낙담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으면 자식에 대해 낙담만 하고 있겠습니까?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또한 눈높이를 확실하게 낮춘후에 문제의 해결을 보다 장기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좀 부족해 보입니다. 이미 트랙을 벗어난 기차를 다시 철로에 올리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기차가 고장이 났더라도 철로위에 있으면 문제해결은 훨씬 더 쉽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변화된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일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부러 보여주려는 노력 말구요.

아무튼 자식 농사는 정말 어렵다고들 합니다. 동의합니다. 각자의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겠지만, 부모의 곁을 떠나 독힙할 때 까지 자녀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할 의무가 부모에게 있기에 많은 부모들이 눈물과 기도로 자녀들을 키울 것입니다. 그 눈물과 기도 만큼 자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할 듯 합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보니 두서 없이 글이 써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4 thoughts on “트랙을 벗어난 자녀를 둔 부모를 만나다

  1. 박효숙

    86학번으로 전남의대에서 공부하고 현재 예수병원에 있는 박효숙입니다. Facebook에서 선생님의 블로그를 발견하고 한참을 읽고 있었습니다. 현재 10살, 12살 두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기도와 눈물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자녀양육임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Reply
    1. 김형태

      안녕하세요. 박효숙 선생님. 글을 쓰고 나서 검색을 해 보니 얼굴이 익습니다.

      Reply
    2. 김형태

      안녕하세요. 박효숙 선생님… 전주에 사시는군요. 제가 후배 여학생들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 이름은 기억에 없지만, 혹시 지나가다가 봤을 수는 있겠군요. 재전 전남의대 동문회에 거의 가지 않기 때문에 뵐 수는 없겠지만, 혹시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연락주십시요. 페이스북에 제 전화가 남겨져 있습니다. 학교에 전화해도 금새 가르쳐줍니다. 두 아들을 키우고 계시다니…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예수 병원에는 아는 분들이 몇분 있습니다.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뵙겠습니다.

      Reply
  2. 김형태

    박효숙 선생님, 혹시 제가 조교 1년차 때 본과 1학년이었나요?
    얼굴이 익어서….
    학번을 계산해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들어서요.
    ㅋㅋㅋ

    Reply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