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有利)와 불리(不利)에 너무 민감한 사회

By | 2013년 12월 19일

누구나 자신에게는 유리한 환경이면 좋은 법이고, 불리한 부분은 싫어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너무 긴시간동안 사람들은 유리와 불리에 대한 민감도를 증대시켜 왔다. 학생들도 그렇다. 주관식이 내게 유리할까? 객관식이 유리할까? 아니면 단답형이 유리할까? 실습을 저 친구와 함께 같은 조가 되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다른 친구와 되는 것이 유리할까?를 생각한다.

이미 학생들은 입시전형이 발표될 때마다, 수능방향이 발표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게 유리할 것인지, 아니면 불리할 것인지를 머릿속에서 계산해 낸다.

유리함을 좇는 것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방어기전임에는 분명하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것은 유리할 수도 있고, 어떤 것은 불리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내게 유리할 것인지, 불리할 것인지에 앞서 우리는 공의()를 생각해야 한다.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평하고 의로운 것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공의를 잃어버린 판단은 늘 자신의 이익을 좇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적어두는 것이다. 자신에게 조금은 불리한 부분이지만 공의를 생각해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규범도 그렇다. 사회질서도 그렇다. 그것을 지키기엔 자신에게 조금은 불편한 일이다. 신경을 써야 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공의를 이루기 위해서 그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자신에게만 유리한 사회환경이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사회는 더욱 황폐해져 갈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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