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져야 할 것과 예민해야 할 것

By | 2014년 1월 23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참 많이 무뎌졌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것이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일까? 젊었다면 참으로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서도 지금은 무뎌지고, 느긋해졌다. 우리의 신체도 느려지고 무뎌졌지만 우리의 마음도 더 느리게 반응을 한다. 인간의 생리적 특성에 맞춘 변화라고 생각된다.

 젊었을 때 처럼 매사에 예민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산다면 아마도 우리의 육체는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금새 지쳐쓰러질 수도 있다. 작은 일에도, 사소한 일에도, 하찮은 일에도, 우리는 늘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반응할 일도 아니었는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졌다.

좀 무디게, 좀 느리게, 조금은 느긋하게 그렇게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나이든 사람으로서 행복해질 조건에 한발짝 앞으로 나아간 셈이다. 세상을 보는 눈과 세상을 품는 마음이 그 만큼 넓어지고 유연해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내 자신도 느긋해지고 느려지는 미학이 필요한 나이가 벌써 되어 버렸다. 오늘 되돌아 본 젊은 시절의 조급함과 성급함이 많은 아쉬움들을 남긴다. “무뎌짐의 미학”이라는 수식어 하나를 만들어 본다.

그러나 우리가 예민해져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죄와 타협해서도 안되고 느긋해서도 안된다. 죄에 대하여서는 민감해야 하고, 단호해야 한다. 죄는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깨뜨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하는 이유는 죄는 서서히 스며들며, 우리의 삶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예민하지 않으면 언젠가 죄투성이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죄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할 정도로 죄에 무뎌져 있을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그것도 딱 한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뎌져야 할 것과 예민해야 할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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