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화상 ② 극장에서의 불쾌한 경험

By | 2014년 4월 28일

우리의 자화상은 그리 나쁘진 않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그리고 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노라면 우리사회의 어두운 면만 부각되어 글쓰는 내 자신도 우울해진다. 그러나 더 좋은 우리사회를 꿈꾸기에 적어두는 것이다.

영화(movie)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상상력 그 이상의 것을 얻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를 관람한다. 그런데 그 관람을 방해하는 많은 방해요소들이 있다. 즐거워야 할 영화감상이 불쾌한 경험만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있다. 어제 그랬다.

스파이더맨을 보러 극장엘 갔다. 이미 내 뒷좌석에는 꼬맹이 두명을 데리고 온 가족이 자리잡고 있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이미 이런 불길한 예감을 만들어낸다. 아니나 다를까 내 뒤에 앉는 꼬마가 계속해서 의자를 찬다. 부모는 말리지 않는다. 참는다. 왜냐면 말하면, 미안해하지 않는 것이 보통의 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참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이가 쏟아지듯 앞으로 넘어진다(소리로 어떤 상황인지 그려지는 순간). 그러면서 앞좌석인 내 의자를 덮치면서 내 뺨과 귀를 후려친다. 아무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라는 말만 아이에게 한다. 참는다. 왜냐면 난 의과대학 교수이고, 교회 장로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주는 바닥(?)이 좁아서 한 사람 건너면 대부분 아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장소에 50명이 모여있다고 하면 그 중 한 명은 바울교회교인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 뒤로 잠깐 얌전히 있더니 영화가 끝나기 20여분 전부터 의자를 계속 차대기 시작한다. ……

영화가 끝났다. 자리에 일어서면서 아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극장에서는 의자를 발로 차는게 아니란다.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단다”라고 말한다. 그 때서야 그 아빠가 나선다. “죄송하다고 말해!”라고. 아이는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다음부턴 조심하거라”라고 말했지만, 난 그 아이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 부모가 대신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게 맞다. 아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많은 한국의 부모들의 반응이다. 때론 “아이들이 그런 걸 가지고….” 또는 “아이들은 다 그래요”라는 반응들을 보인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그것은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어린 아이를 대신해 사과할 수 없는 부모는 결코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왜냐면 사과를 할 정도의 부모라면 발로 의자를 차대는 아이를 처음부터 그대로 두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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