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가면 상여집이 있다. 내가 살았던 곳도 마을의 서쪽에 “횟게등”이라고 불리웠던 조그마한 소나무 숲 동산이 있고, 그 옆에 상여집이 있었다. 겁이 많았던 나는 상여집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하는 것을 기피했다. 상여집을 보는 것 만으로도 매우 무서웠기 때문이다. 간혹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여가 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난 집에 숨어있곤 했다.
마을의 소나무 숲 동산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 부분은 잔디밭이어서 공을 찰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어린 아이들이 공을 차고 놀 수는 있었다. 문제는 동산이 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어서 공이 그쪽으로 잘 굴러가곤 했다. 문제는 축구공이 굴러가면서 그 상여집쪽 도랑으로 빠지곤 했는데, 그 공을 주으러 가는 일은 늘 꺼림칙하였다.
더구나 친구들은 늘 상여집 이야기를 했다. 어젯밤 상여집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밤새 들려왔다는 둥, 상여집 근처에 날라다니는 불이 있다는 둥, 밤에 흰 소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봤다는 둥, 무서운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따라서 낮시간에도 혼자서는 그 근처를 가지 않았다. 그곳 옆으로 지나갈 일이 있어도 멀리 돌아서 가곤했다.
시골에서는 상여집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마을에서도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집에는 처마밑에 관으로 쓸 나무판이 매달려 있기도 했다. 갑자기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멀리 읍네에서 관을 공수하는 일이 쉽지 않은 시절이라, 미리 준비해 두는 집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것도 매우 무서워했다. 내 동창이었던 철국이네(중학교 다닐 무렵 서울로 이사가서 지금도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도 늙은 할아버지가 계셨던 탓에 처마밑에 관으로 쓸 나무판이 매달려져 있었다. 그런 이유로 철국이네 집에는 잘 가지 않았다.
나중에 중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상여집에서 일어났던 무서운 일들에 대한 실체를 알게 되었다. 왜 여자 목소리가 들렸는지, 왜 불이 날라다녔는지, 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는지를 말이다. 그것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의 행적(?)이었다. 그것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모두 귀신들이 소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여집은 늘 무서운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