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64] 죽심이

By | 2014년 9월 21일

죽심이 20150221죽심이는 4, 50대 보이는(어린 내 눈에 그렇게 보였으니 실제론 더 젊을 수 있다)는 여자거지이다(남자거지인 “비끼바 이야기“는 따로 적는다).  집은 신동리에 인접한 “금성리”라고 알려져 있으나 나는 잘 모른다. 그녀가 금성초등학교 교문 앞 남자결핵환자의 집에서 살면서, 그 남자가 죽어갈 때에 함께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 이후로 진도를 떠나 왔으니 소식을 알 길이 없다.

등 뒤에 배낭을 메고 논두렁을 걸어다니며 뭐라고 중얼거린다. 비가 올 무렵이면 그 소리는 또렷해진다. “영수야~!, 영희야~!”를 불러댄다. 따라서 사람들은 “죽은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그녀가 일제시대에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625때 자식을 잃어버려서 저렇게 미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냥 소문일 뿐이고 확인된 바는 없다.

그녀의 몸은 호리호리하다. 얼굴은 일제시대 초등학교 교사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안경도 썼다. 행색은  거지꼴이지만 전체적으로 단아한 모습이었다. 거지꼴인데 풍기는 모습은 단아했다는 뜻이다. 깡통을 차고 있었고,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그 지팡이는 아이들이 다가올 때 쫓아내는 도구이기도 했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다녔던 것 같다. 그 신발로 논두렁을 걸었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때론 입술에 립스틱도 바르고 다녔다.

그녀가 농사를 짓거나 다른 일을 하지 않았고, 배낭을 매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떠돌며 구걸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직접 구걸하여 쌀이나 음식을 얻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마을에 죽심이가 나타나면 아이들이 몰려가 때로는 놀리거나 돌을 던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겁이 많았던 나는 죽심이를 한번도 놀리거나 하지 않았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았지만 근처에 가기엔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그녀가 논두렁에 엎드려 일기 같은 것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런 이야기는 그녀가 간첩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녀가 정보를 수집한 후에 꼼꼼하게 적어서 북한으로 보낼 것이라는 그럴싸한 말도 만들어졌다.

정체불명의 그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거지였을까? 정신병자였을까? 아니면 이들을 가장한 간첩이었을까? 지금도 미스테리이다. 또한 그녀의 이름이 왜 “죽심이”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불렀는지, 아니면 자신이 죽심이라고 말을 했던지 알 길은 없다.

죽심이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대상이면서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