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65] 비끼바

By | 2014년 9월 21일

비끼바 20150221비끼바는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를 찾아오던 거지의 이름이다. 본명은 모르고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부르니 이름처럼 되어 버렸다. 그는 4, 50대 가량의 남자이다. 그는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있으면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으며 “비껴! 비껴”라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즉 “비껴, 비껴”라고 말하는 남자거지에 어미사 “~바”를 붙인 것이다(어미사 “~바”에 대하여서는 “똥바아저씨” 이야기에서 쓴 바 있다).

그는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그 지팡이로 길을 더듬는다. 실은 그의 눈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다. 완전한 장님은 아닌 듯 했다. 왜냐면 우체국 화장실을 드나들때 약간의 겹눈질을 한다는 것이다. 그의 한쪽 눈은 완전히 잠겨 있지만, 다른쪽 눈은 눈꺼풀이 약간 들려 있는데 그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심한 원시나 약시에 안검하수증(ptosis)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입에서는 항상 지독한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났다. 물론 옷에서도 악취가 풍기었다. 그는 둔전저수지 넘어 용장리 집에서 산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아마도 맞을 것이다. 왜냐면 그가 언제나 둔전저수지 둑 위를 걸어서 우리 마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가 오면 동네 아이들이 몰려왔고, 돌을 던지며 놀렸다. 어른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아이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는 구걸을 했다. 우리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지 않았지만 늘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했다. 주로 막걸리를 달라고 했다. 막걸리를 마시고 또 다른 마을로 가곤 했다. 그의 얼굴엔 상처가 나곤 했는데, 술이 취해서 넘어진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얻어맞고 온 것인지, 아니면 앞이 보이지 않아 벽과 부딪혔는지 알 수 없다. 종종 우리집에서 치료를 받곤 했다. 물론 공짜였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10대 후반의 딸이었는데, 가끔 자기 아버지의 손에 줄을 묶어서 끌고 다니곤 했다. 해가 갈수록 비끼바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눈은 더 안보이는 듯 했다(처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언젠가 부터 비끼바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집이 금골리로 이사한 이후에는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장애와 지독한 가난, 그렇게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는 꽤나 있었다. 국가가 그들을 결코 보호해 주지 못했다. 사람들 마져도 그에 대한 작은 동정심만 있었을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의 지팡이가 보여주듯 그는 험한 세상을 혼자서 그렇게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죽심이와는 달리 그를 간첩으로 보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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