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66] 간첩이었을까?

By | 2014년 9월 21일

간첩 201502252학년때 여름방학때였던 것 같다. 한가한 어느 오후였다. 우리집 앞집은 상점이어서 걸터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앉아 있었는데, 놀고 있는 나를 부른다. 어른이 부르면 당연히 가야 하는 법이 통하던 시절이라 다가갔다.

몇학년이냐? 이름이 뭐냐?고 묻더니 재미있는 사진을 보여준다고 한다. 간이용 프로젝터였다. 35mm 네거티브 필름에 프레임으로 쌓인 말그대로 강의 때 사용하는 프로젝트용 필름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앞에는 돋보기 처럼 볼록 렌즈가 붙어 있고, 자연광을 이용해 필름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그런 장치이다.

아무튼 그 안을 들여다 보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진들이 들어 있다. 필름을 꼈다뺏다를 반복하면서 여러가지를 보여준다. 내 기억으로 특별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간첩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가 보여준 그림 중에 북한을 찬양하는 사진들이 들어 있어서 사람들을 서서히 쇠뇌시킨다는 것이다. 그 필름을 본 나는 완전히 쫄았다(아마도 이 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인가?’ ‘나는 이제 간첩에게 포섭된 것인가?’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어렸을 때의 별로 큰 일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낯선 사람을 피하는 계기가 되었던 일이다.

그가 진짜 간첩이었을까? 나를 포섭해서 뭘 어쩌려고?

진도는 도서지방이라 간첩선이 들어올 수 있다. 따라서 반공포스터나 글귀가 상당히 무섭게 쓰여있다. 관공서 건물이나 큰 농협 창고의 벽이나 지붕에 큰 글씨로 쓰여 있다. “이상하면 살펴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이런 포스터는 아주 약한 표현이다. 이런 표현들이 쓰여있다. “민족의 역적 김일성을 찢어 죽이자”라고 말이다. 요즈음은 이렇게 심한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강하게 “반공”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귀는 우리집 앞 창고 지붕에 쓰여 있던 말이다. 매일 보고 다녔다.

학교 곳곳에도 “반공방첩”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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