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질랜드에서 온 편지

By | 2014년 11월 1일

스와질랜드(The Kindom of Swaziland)에서 사역하고 계신 교수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그동안 수차례 메일이 왔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사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선교의 부담감”을 안고 있다. 물론 제가 사는 곳에서 선교(내 삶의 모두가 선교적 삶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신앙적 부담감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없는 크리스천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한 부르심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나의 기독교적 삶이 늘 그렇듯이 내 주변의 모든 상황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곤 한다. 선교지에서 온 편지 한장에 나의 감성이 흔들리는 것이 아닌,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숨기려했던 이 땅에서의 선교적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선교에 대한 비전이 있다거나 그런 삶을 설계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온 편지에 있는 “스와질랜드 기독대학교(Swaziland Christian University)에서 한국의 겨울방학 동안에 해부학 강의를 해줄 수 있으냐?”라는 질문에 대하여 ‘제가 해야 할 상황이면 해야지요’라는 답변인 것이다. 무슨 거창한 선교사적 삶이 아니다. 그냥 크리스천이면 마땅이 해야 할 일들 중 하나인 셈이다. 그렇다고 그 일이 쉽게 “네~!”라고 답변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정도의 내 삶의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십자가에 매달릴 그럴 희생이란 뜻도 아니다.

편지를 보낸 교수님과 만난 적도 없다(실은 수개월전에 우리 대학에 방문했는데 다른 일과 겹쳐서 참석하지 못했다). 영어로 강의하는 일이 내게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할 수 없다는 것도 아니다. 방학을 이용해서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바빠서 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바쁘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그저 상황이 해야 할 상황이니 하는 것이다.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 기쁘다. 내가 해부학자로서,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제 온 편지에는 나 말고도 한두명의 자원자가 있다는 소식이다. 정해진 시간에 해부학 강의 컨텐츠를 학습목표에 맞추어 잘 분배하고, 또 강의의 깊이와 폭을 일정하게 맞출 수 있도록 서로 협력을 한다면 아마도 그곳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을 애써 축소할 필요도 없고, 애써 확대할 필요도 없다. 내게 주어진 또하나의 시간이고 기회이니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이다. 의학의 기본이 되는 해부학을 통해 인체의 구조를 그들이 정확하게 알고, 의학에 입문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대학은 이제 갓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배웠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하여 나는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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