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중간에 적어두는 이야기

By | 2015년 9월 27일

이 글은 순전히 기록용이다. 갈수록 떨어져가는 기억력을 대신하여 이렇게 적어두는 것이다.

밧데리 방전

전주에서 광주로 가서 큰아들을 픽업하여 진도까지 가려고 광주에 도착했다. 잠시 주차를 하고 나서 아들과 내려오니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전원은 들어오고, 시동을 걸면 “따따따따..따따따……”만 하고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이럴 때 “멘붕”이라고 해야 하나? 결국 많은 사람들 귀찮게 하고나서야 보험회사 긴급출동서비를 받음.

문제는 배터리 방전이었다. 전원은 들어오지만, 휩발류 엔진의 특성상 배터리가 부족하여 시동을 걸지 못하였던 것이다. 긴급출동서비스 직원이 가지고 다니는 배터리로 교환했다. 교환 후 진도를 향하여 가던 중 아들이 검색하여 배터리 원가격을 찾아낸다. ㅋㅋㅋ 내 나이가 되면 그냥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빨리 교환하는 편을 선택하게 된다.

아버님 산소

추석날 새벽에 올라와야 하는 일정 때문에 미리 산소를 찾아간다. 역시 산으로 올라가는 좁은 길은 운전에 애를 먹는다. 다행히도 내려오는 차량이 없어 그나마 쉽게 올라갔다. 벌초는 어머니께서 미리 업체를 통해 해놓았고, 일부 질긴 풀에 농약까지 해서 잘 정돈되어 있다. 아내가 준비해준 노랑색 소국(작은 국화)을 양쪽에 가지런히 놓고 기존에 있던 화분의 흙을 버리고 한쪽에 치워놓았다.

할아버님 산소

잔디는 거의 없고 “띠”라고 불리우는 질긴 풀이 덮고 있지만, 벌초는 깨끗하게 되어 있다. 올라가는 길은 여전히 좋지 않다. 그나마 차량으로 가까이 갈 수 있어서 좋다. 할아버님의 봉분(封墳)이 할머님의 봉분 보다 더 작다. 아래쪽으로 작은 아버님의 산소도 있다. 조카들을 참으로 예뻐하시고, 개를 좋아하셨던 작은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외삼촌과 고모 

외삼촌과 고모댁도 들러 인사를 드렸다. 갈수록 늙어가시는 어른들이 모습은 조만간에 우리들이 모습일 것이다. 인생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들이다. 이 땅에서의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 땅에서의 유한함이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더 크게 만들기 때문이다. 외삼촌과 고모님도 천국소망을 바라보고 사시길 소망해 본다.

안개

새벽에 일어나 광주를 들러 전주까지 오는 길에 안개가 자욱하다. 특히 목포에서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광주에 올 때까지 대부분의 구간에서 안개가 자욱하다. 일부는 가시거리가 100미터도 되지 않는다. 광주에서 순창을 거쳐 오는 길도 마찬가지이다. 운전에는 위험하지만 중간중간에 보여지는 산과 안개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도로들

진도 녹진항에서 읍내에 이르는 길이 이제는 완전하 4차선 길로 변했다. 따라서 이전에 살던 우리마을 앞으로 지나지 않고 우회한다. 아내가 놀린다. “고향에 왔는데 옛집도 못보고 가넹”하면서 말이다. 내려갈 때에도, 올라갈 때에도. 어찌하랴, 길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런 도로 덕분에 운전이 훨씬 덜 피곤하다.

아파트 주차장

우리 아파트는 명절에 “오는” 아파트이다. 나이든 어른들이 많은 아파트라 그런지 외지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올해도 어김없이 주차장은 난리이다. 바깥 도로의 한쪽을 거의 점령해 버렸고, 이중주차는 기본(?)이다. 그 중 핸들도 틀어놓고, 연락처도 없이 이중주차를 한 차량도 있다. 어떻게 밀고 나갔는지 두 개의 차량 자리는 비어있고 그 입구를 막고 있다. 누군가 그 차량을 밀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옆에서 그 남자의 부인이 뜯어 말린다. 그냥 놔두라고. 그러나 그 남자는 “이렇게 세워두면 다른 차량이 세울 수 없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밀어낸다. 왼쪽발로 돌하나를 밀어가면서 말이다. 조금 밀고 나서 그 돌로 바퀴앞에 대놓는다. 약간 경사진 곳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차량이 바로 밀려오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주차해놓고 연락처도 남기지 않는다. 오늘밤에도 한바탕 주차대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예배

많은 사람들이 명절을 지내러 본가나 처가를 간 이유 때문인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 내가 맡고 있는 유아부도 부모들을 따라 할아버니댁에 간 이유로 1/3정도 출석했다. 오후에 친정에 가야하는 교사들도 있다(젊은 여자선생님들이 많은 관계로). 아무튼 명절은 명절인가 보다.

선물

이번 추석에 나눈 선물 중 내가 받은 세가지의 선물을 기억하고 싶다. 하나는, 학생이 가져온 선물인데 집에서 만든 양갱이다. 학생들이 선물 사가지고 오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쫓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양갱을 집에서 만들어가지고 온 것이다. 내쫓을 수 없는 선물이고, 그 학생의 형편을 수년간 지켜온 나로선 정말 고맙고 고마운 선물이다. 또하나는 참깨이다. 어머니가 감사하다며 꼭 나에게 전해달라고 한 볶은 참깨 한되가량을 학생이 들고 왔다. 정말 고맙고 잊지 못할 선물이다. 또하나는 황토로 빚은 등대하우스이다. 속에 수제양초를 켜놓을 수 있는 그런 토기이다. 이 선물은 교회 유아부 교사들이 황토를 빚는 분에게 부탁을 해서 주신 것이다. 아마도 이 세가지 선물은 오랫동안 기억할 것으로 보인다.

4 thoughts on “추석명절 중간에 적어두는 이야기

  1. 김은영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셨네요.
    여기저기 인사 다니고 사람들이 집에 북적거리고, 술상을 차려 오고.
    그게 정말 사람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저 정도의 선물이면 받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 마저도 부담스러워 하시는군요.)
    충분히 좋은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주셨으니까요.
    저도 양갱을 좋아합니다.
    좋은 스승과 제자들, 정말 아름답습니다.
    옛날 선물은 양철통에 든 설탕 한 통, 신문지에 싼 쇠고기 한 근, 계란, 참깨 같은 주는이의 마음이 들어간 것들이었는데요.
    더 세월 지나면 어떤 선물이 오고 갈까요?
    즐거운 추석 입니다.
    >> 케이프타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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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태 Post author

      맞아요.
      어렸을 때 추석 때가 되면…
      아버지께서 목록을 만드십니다.
      마을별로 어떤 집에 무엇을 갖다드릴 것인지를 말이죠.
      설탕이 참 많았어요…
      어떤 집은 소주 큰 거….
      진도에서는 댓병이라고 하는데…이게 맞는 말인지 모르겠어요.
      밀가루도 있었구요….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있었네요. 신문에 둘둘 만…
      아주 어렸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갔었는데…
      그 이후에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그렇게 선물을 보내는데 따라 다니곤 했죠…
      저희 집으로 오는 선물은…
      말씀하신대로 깨나..고구마…쌀…이런 것들이었죠.
      다 좋은 추억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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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경림

    이제 다시 일상이 시작되네요!
    같이 힘차게 화이팅해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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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태 Post author

      추석 명절 잘 보냈지?
      실은 어제도 학교에 와서 번역 작업을 하고 갔었지.
      오늘 아침에도 일찍 나오니깐… 오전에 주어진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는 듯. ㅋㅋ

      잘 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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