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ection without communication

By | 2012년 5월 5일

언젠가 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소통(communication)”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세대간이던 지역간이던지…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심지어는 가족간에, 또는 부부지간에도. 그만큼 우리는 소통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든지 “잃어가는 소통이 가져다 주는 어떤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정의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그러나 생각해 보라.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복잡하게 돌아가는가를. 그 와중에 우리의 모습은 우리 사회 이곳 저곳에 모두 연결되어 있다. 수많은 모임들, 수많은 만남들, 거기에 서로와 접촉할 수 있는 얼마나 많은 매체들이 넘쳐나는가? SNS…의 시대에 살고 있다. 즉, 우리에겐 서로 연결(connection)은 되어 있다. 아마도 이런 연결고리들이 깨진다면 엄청난 혼란과 불안을 가져올 것이 뻔하다. 굉장히 개인주의화되어가는 듯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서로 연결의 고리들은 절대로 떼어내지 않는 사회적 특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런 연결안에 소통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피부로 느끼고 있다. 즉, “소통없는 연결”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소통없은 접속”이다. 만남은 있으되, 소통이 없는 사회가 이미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회식자리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술잔을 들어서 환호하지만 그안에서 울려퍼지는 공허함이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통을 되찾기 전까진 아마도 오랫동안 계속될지도 모른다. 다시 우리가 원시사회로 되돌아가서 다시금 인류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힘들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회복의 운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 선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이런 우리에게 소통을 위한 많은 도구들이 있다. 컴퓨터를 비롯하며 스마트폰까지 얼마나 많은 통신수단들이 널려있는가? 그런 하드웨어 맞추어 쓰기 편하도록 수많은 소프트웨어들이 넘쳐난다. 화상전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통”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게 해소된다면 더 이상 이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들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그 소통의 시작과 중심에 가족이 있다. 돌이켜 보자. 우리 가족은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가를. 그 시작점인 가족이 소통을 잃었다면 우리 사회는 자연스레 소통을 잃게 되어 있다. 이미 가족에서의 소통을 잃은 우리가 다른 곳에서 소통을 해 보겠노라고 헤매이는 것은 아닐까? 본질을 잃어버렸는데 정답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한다.

인간 소통의 상실은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의 상실의 시작이 죄이었던 것 처럼 죄가 아닐까? 우리의 죄성이 소통의 시작점인 가족에서의 소통을 상실하는 아픔을 가져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인정하던지 하지 않던지간에 현대인의 가족은 이미 소통의 부족함에 다들 아파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가족의 달, 5월을 맞이하는 주말에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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