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있게 키우는 일…

By | 2012년 6월 28일

“싸가지”의 뜻은 이렇다(네이버사전에서 따옴).

[방언] ‘싹수(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의 방언(강원, 전남).

예의가 바르거나 인품이 뛰어나는 것이 좋겠지만, 조금은 부정적으로 “싸가지가 없는 놈”의 수준에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싹수가 노랗다”는 더 비극적이다. 어릴 때 행동을 보고도 이 녀석이 어떻게 자랄 것인지 이미 짐작을 해 버리는 상당히 비극적인 상황들이 우리 주변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우리가 자랄 때는 어른들의 “꾸짖음”이 있었다. 시대가 갈수록 싸가지가 없어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하지만, 사회의 중심에 서있는 어른들의 꾸짖음은 “싸가지 없는 넘들을 이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일종의 힘”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 힘이 없는 것이다.

그 힘이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식 기죽게 왜 야단치냐?”고 달려드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분명히 사회규범으로 보면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일인데도 엄마들은 이걸 싫어한다. 그것이 아이들을 기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야단치는 할아버지를 향해 사납게 달려드는 젊은 엄마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니, 내 자신도 그런 것을 당한 적이 있다. 야단을 친 것도 아니고, 아이스크림 껍질을 함부러 버리는 아이에게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이야기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 일이 있은지는 벌써 15년이 다 되어간다. 내 자신도 30대 중반 밖에 되지 않았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그 사건 이후에 내 자신은 비겁해졌다. ‘그래, 싸가지 없는 놈으로 그냥 키워라’라는 자포자기적 마음으로 그냥 방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밖에서 싸가지없게 행동하는 자녀를 과연 집에서 얼마나 기안죽이고 자라게 하고 있나?’ 말이다. 나의 선입관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엄마들일수록 아이들의 기를 죽이면서 키울 것으로 짐작된다. 아이들의 기는 그렇게 해서 살고, 저렇게 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기는 얼마나 “올바른” 자존감(자아존중감 自我尊重感, Self-esteem)을 갖고 자라게 해주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이 자존감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인 기준은 아니다. 매우 사적인 기준이다. 따라서 “올바른 자존감”이라는 표현을 나는 더 좋아한다. 잘못된 자존감은 결국 사회성을 떨어뜨리고 만다. 자존감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사회학적 악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처럼 자녀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슬픈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싸가지있게 자녀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싸가지가 있다는 것은 “당당한 사회인”으로 커간다는 것이다. 결국은 건강한 사회인, 리더로서의 사회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자녀 양육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자녀로 성장시키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 부모가 있다. 부모의 건강한 사회성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가진 열등감 때문에 자녀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사안에 대하여 열등감에서 비롯된 잘못된 반응은 자녀를 절대로 건강하게 키울 수 없다. 물론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일부 어른들 때문일 수도 있다. 술이 취해서 지나가는 어린 학생들에게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왜 내 자식만 체벌하냐?”고 학교 선생님들에게 달려드는 엄마와 아빠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식이 잘못된 모습을 보여도 그럴 감출려고만 하는 것도 문제이다. 세상이 자식이 소중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좀 더 객관적이고 중립적 사고를 가진 자녀롤 양육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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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다가 차 안에서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에 1-2교시 수업을 마치고 두서없이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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