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예과 2년의 삶을 적어 두었던 노트에 대한 기억

By | 2017년 6월 29일

나는 의예과 2년을 마치고 겨울방학이 되자 2주간 집에 칩거하였다. 그 이유는 의예과 2년의 삶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2년 동안 적어두었던 메모지, 달력, 수첩, 노트 등 모든 자료를 방바닥에 펼쳐 놓고 정리를 시작했다. 컴퓨터나 타이프 라이터가 집에 없던 시절에 손글씨로 모든 일들을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며칠동안 그렇게 정리하는 것이 하루종일 집에서 하는 일이었다. 며칠동안 기본적인 자료 준비가 끝이 났다. 그리고 주제별로 이야기들을 묶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종적으로 서른 세가지 주제로 좁혀졌다.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한 글을 자료에 근거하여 쓰기 시작했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그렇게 옮겨진 노트의 글을 수정하고 보완했다. 그리고 새로운 노트에 그 이야기를 옮겨 적었다. 서른 세가지의 주제와 글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첫번째와 마지막 주제는 뚜렷하게 생각이 난다. 첫 글의 제목은 “우울한 입학식”이었고, 마지막 글 제목은 “내 친구는 너구리”였다.

2주 동안의 칩거가 끝나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영원히 함께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여자친구였기 때문에 복사본을 만들어 놓지 않은 채 그 노트를 넘겨주었다. 1년 뒤에 헤어지면서 그 노트는 불타버렸다(불태워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기록이 나의 의예과 2년의 삶의 전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젊은 시절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에 대한 좀 더 정확한 것을 알 수 있을텐데 많이 아쉽다. 지금 되돌아보는 젊은 시절의 삶의 모습은 수많은 시간들이 지나면서 포장되거나 왜곡되거나 변질되었을 수 있기 때문에 당시에 적어 두었던 글이 그만큼 소중한데, 없어져 버렸으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내가 그 시절에 그렇게 의예과 2년의 삶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었고, 그 경험은 지금의 내 삶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나는 의예과생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기회가 생기면 늘 이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너희 의예과의 삶을 책으로 남겨라“라고 말이다. 이 말은 내가 쓴 책 “의사의 미래, 의예과에 달려 있다“에도 적어 둔 이야기이다. 오늘 성적 때문에 찾아온 한 의예과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책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 기록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이렇게 블로그에도 적어 둔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