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웠던 발생학 교과서

By | 2017년 10월 4일

1984년 본과 1학년 1학기 매주 토요일 1, 2교시는 발생학 수업이 있었다. 타대학에서 교수님 한 분이 오셔서 강의를 하셨다. 강의를 하셨다기 보다는 그냥 책을 읽으셨다. 영문책을 계속해서 읽어가는 스타일의 수업이었다. 물론 중간에 한번씩 설명을 했지만, 대체로 책을 읽는 강의시간이었다.

선배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수업을 들을 필요없고, 그냥 나중에 야마(족보)만 준비해서 시험보면 돼!”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강의하는 내용을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시험준비도 야마만 하지 않고, 교과서를 꼼꼼히 읽어가며 준비했다. 의과대학 본과 4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서관에서 밤샘 공부를 했던 날이기도 했다.

시험 결과는 처참했다. 말 그대로 야마만 공부한 학생들은 통과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재시험을 치러야 했다. 나도 재시험을 치러야 했다. 재적수 231명 중 116명이 재시험을 치렀다. 재시험은 어떻게 준비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재시험자 중에는 공부를 꽤나 한다는 여학생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어제 집에 있는 책들을 정리하다가 내가 보았던 발생학 교과서를 발견했다. 이 책은 향후 10년간은 보관하려고 한다. 내가 정년을 할 무렵에는 교과서로 사용하는 책들은 모두 버릴 예정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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