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in car

By | 2018-07-18

콩글리쉬 논란을 뒤로 하고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차의 뒷유리창에 여러가지 문구의 스티커를 붙인다. 스티커의 문구는 단순히 “아이가 타고 있어요”로 부터 시작해서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와 같이 좀 더 애교스럽게 변했고, 최근에는 “귀염둥이 남매가 타고 있어요”라든가, “예쁜 쌍둥이 공주님이 타고 있어요” 등 다양한 형태의 스티커들이 등장했다.

이 스티커들은 원래 사고발생시 아이가 타고 있으니 꼭 확인한 해 달라는 뜻이지만, 실제로 “아이가 타고 있으니 뒤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난폭한 운전을 하지 말아달라”라는  뜻을 전달하는 목적으로 붙인다. 또한 아이와 상관없지만, 초보운전자들이 초보운전 스티커 대신에 붙이기도 해서 이 스티커의 본질을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우기 이런 스티커를 붙이고 오히려 난폭운전을 하는  운전자들도 있어서 이 스티커의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어제 유치원 차량에서 아이가 내리지 못하고 방치되는 바람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정말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 안에 있는 아이들을 잘 챙기는 어른들이 되어야 한다. 아침에 온라인 상에서 이 슬픈 소식을 접하면서 이 스티커가 떠올랐다.

저 스티커는 비본질이다. 본질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이다. 본질을 망각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저런 스티커를 붙이는 차량 마저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들에게 경적을 울리는 모습은 차 안에 탄 자신의 아이들만 중요할 뿐, 다른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우리사회 전체가 다음세대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어른들에게 있다. 그런데 사회적 분위기는 자신의 자녀가 아니면 그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 어떤 어린아이라도 자신의 자식처럼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사회의 미래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참고] Baby in Car는 “My baby in this car.”에서 꼭 필요한 단어만 남겨두는 바람에 콩글리쉬가 되었다. 최근에는 “Baby on Board”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2 thoughts on “Baby in car

  1. 김은영

    순전히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어린이가 숨졌습니다.
    납득이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도 ‘아이가 타고 있다’는 차량 스티커를 보면 불편한 마음 들때가 있었습니다.
    어린이를 보호하자는 것이 본질인텐데 어쩔 땐 어른들의 과장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다시는 이런 일 없었으면 합니다.

    1. 김형태 Post author

      말씀하신대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정말 부모들에게는 너무 큰 아픔이니까요.
      어른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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