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하다는 것은

By | 2013년 2월 1일

친구(親舊), 친부모(親父母), 친형제(親兄弟), 친척(親戚) 등에 들어가는 친할 친(親)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그래, 그 사람과 친해” “친하게 지내라” “나, 그 사람과 친해” 등의 표현에서 사용된다.

그렇다면 과연 “친하다”라는 말을 우린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을까? “친해진다”라는 것을 우린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서로 친하게 지내라’라고. 물론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형제지간에 친하게 지내라”라고 당부합니다. 우리 사회의 언어구조상 그렇게 명령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제 한달이 있으면 저희 의전원도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일반 학부와는 달리 학생들의 나이가 일단 많습니다. 학부를 갓졸업한 학생부터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온 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형성합니다. 교수로서 이 학생들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원합니다. 그렇다면 난 어떤 생각으로 ‘학생들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바라는 것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동아리나 동문모임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친한 친구들”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그러면 외톨이처럼 혼자 다니는 “친함” 없는 것일까? 나이가 든 의전원안에서도 외톨이는 있다. 그동안 살펴본 바로는 외톨이는 두 부류가 있다. 그냥 이름을 억지로 붙여 본다면 “선천성 외톨이”와 “후천성 외톨이”가 있다.

선천성 외톨이란 그저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남의 크게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행동을 보인다. 의전원에서 간혹 이런 학생들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남들과는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간혹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은 주로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조용하게 학교를 다닌다. 교수들도 잘 인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학생들은 몇몇 절친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는 후천성 외톨이들이다. 입학 후 힘든 의전원 생활과 함께 상처를 받는 학생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경우이다. 친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에게 자신에 대한 속마음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실이 온통 학급안에 퍼진 경우들이다. 다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거나 비난한다고 느끼게 되어 그 다음부턴 마음문을 닫아 버린다.

의전원은 매우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다양한 학부 출신들임에도 불구하고 의전원이라는 작은 울타리안에서 생활한다. 같은 강의실, 같은 학생들, 같은 교수들, 모두가 변하지 않는 작은 세상이다. 이 세상에 살다보니 작은 것 하나에 이야기감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구설수에 오르곤 한다.  극히 개인적인 일에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고, 이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의 시작은 “신뢰의 깨짐”에서 비롯한다.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간혹 생기는 외톨이들은 대부분 이런 상처에서 비롯하게 된다. 학생들의 환경은 다양하다. 부잣집 아이들도 있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도 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경우도 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경우도 있다. 경제적 상황도 다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다. 이런 “서로의 다름”에 대하여 서로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간혹 이런 배려의 부재로 인한 갈등의 시작도 있다.

“친하다는 것은 신뢰에서 시작한다.”

우리 사회엔 이런 신뢰가 필요하다. 아무리 “친하게 지내라”고 말하더라도 거기에 신뢰가 없다면 절대로 친해질 수 없다. 친한 척은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친함”은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신뢰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서 다가갈 수 있는 “작은 관심”이 친함을 시작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작은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분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가섬이후에는 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성품”이 뒤따라야 한다. 신뢰의 성품을 갖추었을 때 비로서 우린 친구를 만들 수 있다.

의전원 생활은 누구나 힘들다. 갑작스럽게 많아진 공부분량과 전혀 새로운 학문에 대한 두려움까지 힘든 시간들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다들 열심히 살아간다. 그 시간속에서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지성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의전원 학생들은 앞으로 의사가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게 동기를 부여한 작은 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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