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조심스러운 것

By | 2013년 2월 7일

살면서 늘 조심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이렇게 사니깐 너도 이렇게 살아!”라는 생각과 말이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것이나 도로에서 운전자들이 지켜야 할 것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그런데 내 삶 가운데 남들과 다른 부분을 찾아 “나처럼 살아라”라고 강요하는 것은 조심하고 있다. 조심한다는 말은 누구나 남과 다른(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삶의 행동들) 삶의 모습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을 뜻한다.

예를 들어, “내가 길거리를 가다가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으니 너도 그렇게 해라”라는 식을 말한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린 삶의 작고 큰 모습들 속에서 이런 “강요”를 보게 된다. 따라서 내 스스로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다. 특히 블로그에 글을 많이 남기는 나로선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강요는 아니더라도 자꾸 가르칠려고 하는 성향을 매우 조심하고 있다.

솔직히 내 인생을 돌아다보면 “내가 잘 살았으니 나처럼 살아라”라고 말할 구석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오늘 퇴근하면서 후진국적 운전자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것은 강요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교수로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혹시 나의 잘난 점(있다고 치고)을 학생들에게 강요는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글에 남겨두는 것이다.

그런데 딱한가지는 강요를 해서라도 내 말을 듣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분명한 체험적 신앙을 갖고 있는 나로선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물론 믿음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우리 인간에게 주는 축복의 선물이다. 그런데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꼭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길거리에서 “에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 분들의 믿음은 의심하지 않는다.

헛점 투성이의 내 삶을 보고서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난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완벽해 질 수도 없다. 다만, 내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내 삶의 분명한 철학과 삶의 방향, 삶의 목적이 있다. 그럼에도 늘 헛점 투성이의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사람들에게 강요를 하고 싶은 것이 딱 하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 보세요”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앎지 않고는 아버지에게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7절)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전 강요하고 싶습니다. 꼭 예수님을 만나시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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