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강의가 되려면…

By | 2013년 3월 11일

좋은 강의는 교수의 머리에서 시작한다. 수업을 디자인해야 한다.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진행하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를 디자인해야 한다. 전체적인 기획안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맞도록 수업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요즈음은 수업자료는 대부분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자료이다.

나는 Mac을 사용하기 때문에 키노트(Keynote)로 슬라이드를 만든다. 학생들에겐 미리 수업자료를 배포한다. 학생들의 불만(?)의 소리를 없애기 위해 강의안과 같은 수업자료를 준다. 물론 학생들의 자료와 약간 다른 부분들이 있다. 학생들은 하나의 슬라이드라도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확대하거나 강조하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따로 한다. 학생들에 똑같은 슬라이드를 반복해서 줄 필요는 없지만 프리젠테이션 때는 그렇게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슬라이드를 만든다. 물론 이렇게 하려고 Keynote를 사용하는 것이고, 슬라이드를 최대로 좋게 만든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강의실에 들어가서 보니 전자칠판이 먹통이다. 전원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부랴부랴 포터블 프로젝터를 해부학교실에서 가져왔지만 스크린도 내려오지 않는 상황이다. 최소한 스크린이라도 내려와 있으면 포터블 프로젝터로 비추면 되는데 그것마져 되질 않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좋은 슬라이드를 만들어도 이런 기본적인 것이 받쳐주지 않으면 좋은 강의가 될 수 없다. 금요일과 토요일 내내 강의할 내용의 그림을 모두 캡쳐했다. 갑자기 교과서가 바뀌었기 때문에 모든 그림을 새로 캡쳐해서 강의안에 넣어야했기 때문이다. 힘든 작업들이었고, 기존의 슬라이드를 바탕으로 그림을 삽입하는 작업이었지만 그림들이 바뀌고, 내용도 조금 바뀌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런데 강의실의 시설마져 작동을 안하니 강의는 더욱 힘들었다. 벽면에 포터블 프로젝터로 비추었기 때문에 그림도 제대로 안보이고 사이즈도 작아서 수업 진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금요일까지 괜찮던 전자칠판이 이 모양이 되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나의 노력들의 결과가 허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분노를 뒤로하고 수업을 진행했지만 내가 처음 예상했던 진도를 맞추지 못하였다. 진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내 계획대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는 피곤한 일이다. 앞으로 다리(하지, Lower Limb)의 강의는 세번(2시간짜리 강의)이 남아 있다.

교수학생, 그리고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을 때 좋은 강의가 된다. 월요일 아침 첫시간의 강의는 고장난 시설로 인해 나의 만족감이 많이 떨어진다. 나로선 슬픈 날이기도 하다.

6 thoughts on “좋은 강의가 되려면…

  1. 모네81

    저는 어떤 이유(기기문제, 준비한만큼 전달하지 못한 경우, 학생산만등)에서든 강의가 계획대로 혹은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않으면 그 착잡함이 오래가더라구요. 그래도 선생님의 완벽한 준비나 노력은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즐거운 한주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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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태 Post author

      댓글 감사합니다.

      점심 먹고…(평소보다 좀 일찍)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내가 수업끝나고 와서 쓴 글을 다시 읽어보고 있었는데..
      댓글이 있네요.

      한주간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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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현희

    젊으신 교수님이라 그러신지
    수업준비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감명깊습니다.

    훌륭한 교수님 밑에서
    대한민국과 지역사회의 의료를 책임질
    훌륭한 의사들이 배출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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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태 Post author

      젊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들은 저를 할아버지 정도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 말이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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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무라노사우루스(차경우MD)

    저도 옛날 해부학 강의들을때 생각이 나네요.
    그냥 평이한 칠판 강의였지만 교수님의 열정은 대단했어요.
    졸업 여행때 지도 교수로 함께 하셔서 저에게 인생 조언도
    많이 해주신 해부학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스승의 날때 인사드리러 함 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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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태 Post author

      앗…무라노사우루스 선생님…

      제 블로그를 다 오시고…. 감사합니다.

      번개 땐 뵐 수 있겠지요.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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