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과 전원주택에 산다는 것…

By | 2013년 9월 1일

사람들은 누구나 전원생활을 꿈꾼다. 따라서 최근 10여년간 사람들은 전원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닭장과 같은 아파트생활을 떠나 땅을 밟고 사는 생활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도시생활과 자녀교육 등의 문제로 도시 가까운 곳에 주택을 짓다보니 서울 근교는 땅값이 치솟는(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형상이 벌어졌다. 전원주택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때로는 부의 상징처럼 비추어지기도 했다.

전원주택 전문건축회사들도 생겨나고, 여기에 따른 많은 문제점들도 발생했다. 전원주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나 책도 쏟아져 나왔다.

나는 단순히 개를 키우고(집안에서 키우는 작은 개들 말고, 진도개나 삽살개 같은 큰 개들) 싶은 마음에 전원주택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러가지 여건으로 인해 실행에 옮기고 있지는 못하지만 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주택의 개념은 도시를 떠나 농촌지역에 짓는 그런 전원주택이 아니다. 도시안에 작게 짓더라도 “전원생활”이 가능한 그런 집을 지어보고 싶은 것이다.

마당이 없어도 개를 키울 수 있는 집, 그 안에서 전원생활이 가능한 집, 그런 집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농촌지역에 지어놓은 집인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이 전원생활을 의미한다고 보질 않는다. 전원생활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아파트에서도 전원생활은 가능하다. 작년초에 거실을 서재화했던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거실의 서재화1, 거실의 서재화2).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전원생활을 할 수 없다면, 전원주택을 지은다고 해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삶의 장소가 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와 생각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도시의 아파트 거실에서 책을 읽을 수 없다면 전원주택에 살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삶의 모습은 그대로 연속되기 때문이다. 물론 삶의 장소가 변하면 어느정도 삶의 태도도 바뀌겠지만, 본질이 변화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2년전에 집을 설계하는 프로그램을 구입하여 직접 설계해 보기도 했다. 이러 소소한 행동들은 내 삶의 작은 기쁨이자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이런 꿈을 꾸어보는 일도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창문을 타고 들어노는 싱그러운 가을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전원생활”과 “전원주택에 산다는 것”의 명백한 차이가 불현듯 떠오르기에 몇자 적어두는 것이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