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부적이 아닙니다

By | 2013년 9월 27일

길위를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들. 그 자동자들의 백미러에 달린 수많은 악세서리를 본다. 인형부터 목걸이, 십자가, 연꽃 등 각자의 취향대로 걸어놓은 여러가지가 걸려 있다. 특별히 종교적 색깔을 들어내는 것들을 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를 타인이 알아 볼 수 있는 표현을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이나 옷 등에 표시를 할 수 있다. 악세사리가 대표적인 것이다. 기독교나 천주교도 마찬가지이다. 비단 신부들이 입는 로만 칼라(Roman collar)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하는 십자가 목걸이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문양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자신이 타고 다니는 차에도 십자가를 걸어두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운전자들마다 각자의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들을 걸어 놓았을 것이다.

간혹 드물게 그런 십자가를 건 차량 중에 비상식적인 운전을 하는 운전자를 보게 된다(물론 다른 종교적 표시를 단 차량도 예외는 아니지만 타종교까지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경우에, 자기중심적인 운전의 모습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십자가를 달고 있지?’

기독교에서 십자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닌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르겠다”라는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 죄로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죄성의 인간이 “십자가의 도”를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내 몸에 있는 십자가의 악세서리던지 차 안에 걸어놓은 십자가이던지 간에 우리는 그런 십자가의 의미를 매일 매순간마다 깨닫고 살기위한 하나의 작은 몸부림의 표현이다. 그런 생각에서 십자가를 걸어 두었다면, 조금은 운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도로는 세상이 모든 사람에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이기적인 운전은 불쾌감 뿐만 아니라 자칫 위험한 상화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굳이 십자가를 건 운전자들을 꼭 집어 이야기하는 이유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보이자”라는 의도이다. 크리스천인 내 자신이 크리스천을 비하하기 위함이 아니다. 최소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다짐한 사람답게 그렇게 살아가자는 의미이다.

내 자신도 언제든지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갈지도 모를 그런 죄성의 폭탄(?)임을 잘 알기에 내 스스로를 날마다 매시간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피흘려 돌아가신 십자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매일매일 내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며, 겸손하게 살아가고자 내 자신을 늘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 것이다.

차에 십자가를 달아놓은 이유가 다른 위험으로 부터 보호를 받자는 부적과 같은 의미로 달아두는 크리스천은 거의 없겠지만, 달아놓은 십자가와 변화된 자신의 삶의 일치를 가져올 때 그 십자가가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부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적은 해로운 모든 것들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갖게 된다. 크리스천의 삶은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왜냐면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때론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인생의 모습들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는 던지며 살아간다.우리에게 있을 모든 일(우리의 시각으로 좋은일 또는 나쁜 일이라고 판단되는)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런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셈이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다. 달아놓은 십자가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가 함께 하시기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더욱 달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운전문화, 그리고 그 중에 크리스천의 삶의 모습을 차량에 걸린 십자가들을 보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