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장학금, 그리고 부요함

By | 2014년 4월 4일

학년주임교수를 하다보면 장학금 수혜자를 선정해야 한다. 장학생(성적장학금은 등록금을 낼 때 이미 성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함금이다)을 선발하기 전에학생들과의 면담을 하게 된다. 정말 형편이 딱한 경우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간혹 장학금을 떠도는 돈으로 생각하고 그냥 찔러보기식으로 장학금을 신청하는 학생도 있고, 지도교수(평생지도교수제에 의한)를 찾아가 죽는 시늉을 해서 지도교수를 통해 장학금을 신청하기도 한다. 실제로 가난하지 않은 학생이 지도교수에서 가난한 척 말해서, 장학금을 받은 적도 있다(장학금을 결정하는 학과장은 교수의 설명을 듣고 지나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언젠가 한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학생이 정말 가난한 줄 알고 부탁드린 것인데, 나중에 보니깐 아니더라구. 난 학생이 거짓말 할 줄은 정말 몰랐어. 내가 순진한 것인가?”라는 푸념어린 말씀속에는 배신감이 젖어 있었다.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면담학생들은 실제로 가난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장학금은 액수가 정해져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조금씩이라도 줄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이럴 때 마다 기부입학제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장학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기부입학제 말이다. 사회에 기부를 하는 문화가 낮은 우리사회에선 자식을 입학시키는 조건으로 기부금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전북의대 동창회에서도 장학재단이 있고, 꾸준하게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동문들이 장학금으로 내놓기 때문에 참으로 귀한 일이다. 그런 동문들 중에는 큰 돈을 내는 분들도 있다. 자신이 학교에 다닐 때 가난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이제는 동문후배들을 돕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교수들도 장학금을 내놓는다.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장학금을 내놓는 손들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이미 부요(富饒)한 삶이다. 가난 때문에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훗날에 이런 부요한 삶을 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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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후에 학생들과 면담했던 면담지,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맵(map, 마인드맵을 이용해서 학생 면담 내용을 만들어 놓은 것), 그리고 장학금내역서 등을 큰 테이블위에 펼쳐 놓고 조교와 함께(계속 합산해가면서 작업해야 해서) 장학생을 선발하였다. 선발하고 있는 과정에서 학과장의 문자가 왔다. ‘뭔가 잘못되었느니 일단 멈추라!’라고 말이다.

과연 학생들은 알까? 교수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때 이런 머리아픈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재원(財源)은 없지. 줘야 할 학생은 많지. 이러니 돈이 조각나서… 별로 도움도 안되겠지만, 최대한 노력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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